11권 5호
<역사강화>

천하명궁 이지란 장군

차상찬



여러분이 동무들과 놀 때에 눈이 커다란 사람을 보면 흔히는 통두란(?豆蘭)이 같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 통두란이란 사람은 곧 여기에 말씀하려는 이지란이올시다. 그는 본래 여진(지금은 만주입니다)의 금패천호(무관 벼슬입니다) 아라불화의 아들로 본 성명이 통두란이었으나 뒤에 이 태조에게 돌아와서 군공을 많이 세운 까닭에 이지란으로 성명을 고쳐주었습니다. 그는 처음 날 때에 하늘에서 별안간 큰 별이 나타나서 그의 집 우물로 뻗쳤었는데 어떤 천기 잘 보는 사람이 말하기를 그 별은 계명성이란 별인데 그 별이 비취는 곳에는 반듯이 영걸스러운 큰 인물이 나리라고 하드니 과연 그 집에서 그가 탄생하였습니다.
그는 키가 자그마하고 얼굴이 어여쁘며 눈이 샛별 같이 반짝반짝하야 잠깐 보면 모양이 잘 생긴 여자 같지 만은 어려서부터 힘이 천하장사이고 용맹스럽고 활을 잘 쏘며 말도 잘 탔습니다.
그는 대대로 여진의 천호로 내려오다가 고려 공민왕 때에 여진 사람 백호를 데리고 함경남도 북청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그때에 이 태조는 무관으로 고광성(경흥)에 있었는데 그의 서모 최씨가 꿈을 꾼즉 어떤 노인이 와서 말하기를 지금 개강가에서 사냥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을 얻으면 가이 큰 왕업을 이룰 수 있다고 함으로 이 태조를 불러서 그 꿈 이야기를 하였더니 태조가 크게 이상히 여겨 그 강가로 가본즉 과연 이지란이가 사슴사냥을 하고 있었습니다.
태조는 한번 보고 크게 기특히 여겨 자기의 부인 강씨(이는 곧 신덕왕후입니다)의 형님의 딸과 혼인을 하게하고 피차에 의를 굳게 맺어서 사냥을 가거나 무슨 싸움을 하러 갈 때면 반듯이 같이 갔었습니다. 그때 고려에는 북으로 몽고와 여진이 자주 국경을 침입하고 서남으로는 또 왜구가 항상 노략질을 하야 변방이 소란하고 인민이 안도를 하지 못하니 나라에서 크게 걱정하고 이 태조와 이지란 두 사람을 보내서 그 외적을 쳐서 물리치게 하였습니다.
한번은 몽고 숭상 납합출이 수만기를 거느리고 홍긍(현재의 홍원)에 침입하야 관서에 불을 지르고 인민을 함부로 죽이니 그는 이 태조와 같이 한관영을 넘어서 합란평야에서 적과 대전할 새 태조는 활로 적장의 겨드랑이를 쏘고 지란은 앞으로 돌격을 하니 적장이 크게 경황하야 즉시 도망하였고 또 한번은 왜구가 밤중에 강화성을 습격하야 부사 김인귀를 죽이고 수로를 거쳐서 개성의 부근인 승천부(현 풍덕)까지 침입하니 왕이 왕비를 데리고 어디로 피난을 가려고 하였습니다.
그때에 지란 장군은 그 소식을 듣고 크게 분개하야 이 태조와 같이 급히 군사를 끌고 승천부에 다다르니 적장이 벌써 백마산을 넘어서 무인지경과 같이 쳐 오는지라. 장군을 급히 활을 들어 적장을 맹렬하게 한번 쏘니 활시위 소리를 따라서 적장이 꺼꾸러져 죽고 나머지는 아무 저항도 없이 그냥 도망을 하였었다.
그런지 오래지 아니 하야 적선 오백여척이 또 진포에 들어와서 해변의 여러 고을을 도륙하고 다시 전라도로 침입하야 운봉군을 함락한 후 인월역에 주둔하니 지란과 이 태조는 또 그 적군을 없애려고 운봉까지 갔었습니다.
그때 적장 중에는 아기발도란 사람이 있는데 나이 비록 20 미만이나 용맹이 적군 장수 중 제일 초월하고 몸에는 황금 중갑을 입고 머리에는 쇠투구를 써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태조는 그 소년 적장을 속으로 기특하게 여겨 지란에게 부탁하기를 죽이지 말고 산채 그대로 잡으라 하니 지란은 반대하야 왈 적장을 비록 죽이기가 석하나 저를 죽이지 않으면 반드시 다른 여러 사람을 죽이기 쉬울 터이니 먼저 죽이는 것만 같지 못하다 하고 다시 죽이기로 결심하고 피차에 약속하되 태조는 먼저 적장의 투구를 쏘아서 투구를 벗기고 지란은 그 틈을 타서 적의 얼굴을 맞히기로 하고 양군이 서로 싸우게 되매 약속한 것과 같이 태조가 먼저 적장의 투구를 쏘아서 말 아래에 떨어트리고 지란은 곧 뒤를 이어 적의 얼굴을 쏘아 죽이니 남은 적병이 모두 울며 도망질을 하였습니다. 그 뒤에 그는 어머니의 상사를 당하야 벼슬을 사직하고 자기 고향인 북청에 가서 있더니 여진 장군 호발도가 사만의 대병을 거느리고 단천에 들어와서 크게 발호하니 그는 태조의 권고로 상중에 나아가 길주평야에서 태조와 같이 적장을 죽이고 큰 승첩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뒤 합란부에서는 또 왜구를 쳐서 크게 승첩을 하니 함관령으로부터 우두산에 이르기까지 삼십여 리에 적군의 시체가 들을 덮고 피가 개천을 이르렀습니다.
그는 이렇게 큰 공을 세운 까닭으로 이 태조가 등극을 한 뒤에 정사공신에 청해군을 책봉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벼슬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고 북청에서 십여 년 동안이나 있었습니다. 태종(태조의 아드님)은 그를 크게 쓰려고 항상 불렀으나 그는 도모지 응하지 않고 머리를 깎아서 그의 굳은 뜻을 뵈었습니다.
그는 나이 72세에 죽었는데 유언으로 화장을 하고 그 나머지 뼈를 묻었으니 지금 함남 북청에 있는 그의 산소는 그의 유골 묻은 곳이요, 조선 각지에 흩어져 사는 청해 이씨는 대개 그의 자손들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