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 짬뽕 탕수육

김영주 글/고경숙 그림/재미마주/43쪽/6500원

어른이 된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재미있었다(!)고 여겨지는 어린 시절의 놀이가 있다.
앞에 친구가 가는 걸 보면, "앞에 가는 사람은 도둑∼놈, 뒤에 가는 사람은 경∼찰"
하고 외치며 희희덕거리던 했다. 그러면 앞에 가던 친구는 뾰로퉁해져서 자꾸 내 뒤로 오려고 하고, 나는 또 뒤로 가고, 이렇게 몇 번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 새 멀리까지  지나오곤 했다.
'경찰'이 좋아서라기 보다는 '도둑'은 되기가 싫어서  아이들은 기를 쓰고 뒤에서 가려고만 했다. 하긴 뒤에서 "앞에 가는 사람은 도둑∼놈, 뒤에 가는 사람은 경∼찰"을  외치며 가는 기분은 괜찮았던 것 같다. 뒤에서는 앞에 가는 친구의 뒤통수를  보며 실컷 뽐낼 수가 있었지만, 앞에서 '도둑' 신세가 됐을 때는 그냥 도둑 노릇만  하는 게 하니라 뒤통수에 박히는 친구의 따가운 눈초리(!)까지도 감당해 내야 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아이들이 하는 '왕 거지' 놀이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공부시간 동안 참고 있다가 쉬는 시간이 되면 우르르 화장실로 몰려가는 아이들에게 오줌을 참는 건 그리 쉽지만은 않은 일일 것이다. 게다가 노는  시간으로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을 오줌을 누기 위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도  아까울만 하다. 더구나 옆에 변기는 비어 있는데도 그 변기를 모른 척 하고 길게 줄을 서서 볼 일을 봐야 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길게 줄을 늘어서 있다 보면 급하지 않았던 볼 일이 갑자기 급해지는 게 또 사람의 심리라서 더욱 힘들어 진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 어려움을 감수한다. 누구나 '왕'이 되고 싶지, '거지'가 되고 싶은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화장실에서 한번 '거지'가 되면 화장실 밖에 나와서도 계속 아이들에게 '거지'라는 놀림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기를 쓰고 '왕'의 자리에 줄을 선다.
그런데 이 '왕'의 자리가 정해 있는 건 아니다. 누군가가  큰 소리로 변기를 차례로 짚어 가면서 '왕, 거지, 왕, 거지……'를 외치면 그 자리가   '왕 자리', '거지 자리'가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미 정해진 '왕, 거지' 자리도 큰 덩치는 마음대로  바꾼다. 아이들  세계에도 권력이 존재하는 것이다. 덕분에 주인공 종민이는 계속 '거지'로 남아있게 된다.
그러다 드디어 종민이는 '거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낸다.
아이들이 잔뜩 모여있는 화장실에 들어가 '왕,  거지' 대신 '짜장, 짬뽕,  탕수육'을 외친다.
그리곤 자기는 '탕수육' 자리에 가서 선다. 아이들은 처음엔  어리둥절 하지만 곧 자기가 좋아하는 '짜장', '짬뽕', '탕수육' 자리에 선다.
유쾌한 반전이다. 아이들은 권력의 냄새(?)가 나는 '왕, 거지' 놀이 대신에 '짜장,  짬뽕,  탕수육'을 선택한다.  '짜장, 짬뽕, 탕수육' 을 할 때는 정해진 변기에만 줄을 길게 늘어설 까닭이 없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지 자신이 좋아하는 까닭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글도 따뜻하고 좋지만, 종민이의  집에서부터 종민이의 뒤를 따라  나와 학교에서 종민이가 '짜장, 짬뽕, 탕수육'으로 분위기를 바꾸기까지의  모습을 잘 잡아낸 그림도 이  책을  더욱 값지게 만들고 있다.(글 : 오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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