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을 넘어 빛의 세계로 - 크라바트

오트프리트 프로이슬러 글/박민수 옮김/비룡소


   
1
   고3 여름이었던가? 학교에서 야간 자율 학습을 하다가 집에 가던 도중이었다. 문득 불 꺼진 학교가 을씨년스럽게 생각되어 무심코 뒤를 돌아 보았다. 그때 어두워진 학교 뒤에서 쏟아졌던 그 별빛들!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공부가 되어서 남아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공부를 많이 한 것도 아니고 그저 볼펜만 돌리다가 시간만 보내고 가는 도중이었다. 눈앞에 닥친 현실 때문에 열심히 하는 친구들 곁에 있으면 덜 불안할 것 같아서 남아 있는 나날이었다. 그런데 그 별빛들은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너무 맑았다. 속이 확 트이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 그 별들처럼 예쁘게 살고 싶었다. 몇 개월만 참자, 그러면 내 고민들도 끝이 나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인생은 끝도 없이 선택해야 하고 고민해야 하는 것이라는 걸 그때는 몰랐었다. 더욱 더 무게가 무거워지는 고민들이 오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지금도 나는 무수한 선택을 하고 산다. 조그마한 일에서부터 큰 일까지.
   생각해본다. 아무것도 모르던 그 시절에 내가 별빛을 바라보며 했던 결심들은 지금의 나를 있게 했고 그 나름의 소중한 기억으로 나를 즐겁게 한다. 아무리 하찮은 일일지라도 그것이 나에게 힘이 되었다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추억인가? 앞으로 쉽지 않은 결정을 내릴 때 나는 또 무엇으로부터 힘을 얻고 위안을 받을 것인지 자뭇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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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크라바트>는 <왕도둑 호첸플로츠>(비룡소) <꼬마 마녀>(길벗어린이)를 쓴 독일 작가 오트프리트 프로이슬러의 작품이다. 이 소설의 무대는 수 백년 전의 유럽으로 마술을 매개로 한 환상적인 이야기이다. 크라바트는 14살의 소년이다. 작가는 14살의 소년을 마술을 배운다는 방앗간으로 데리고 들어가 3년을 살게 하고 마지막에는 성장한 청년으로 방앗간을 나오게 한다. 그 방앗간에서는 현실의 나이보다 더 나이를 먹게 되므로 3년의 세월은 우리의 청소년 시기인 6년의 세월과 같다.
 크라바트는 고아이다. 거지이다. 정월 초하루와 예수 탄생을 맞아 벌이는 축제에 크라바트는 다른 거지 소년들과 함께 동방에서 온 왕 흉내를 내며 먹을 것을 얻으러 다니는 중이었다. 그때 크라바트는 이상한 꿈을 꾸게 된다. 열 한 마리의 까마귀가 자기를 내려다 보고 있고 허공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 크라바트! 슈바르츠콜름의 방앗간으로 오너라. 너에게 해 될 것은 없노라!"

라고 얘기한다. 계속해서 같은 꿈을 꾸게 되는 크라바트는 드디어 그 방앗간으로 찾아가게 되고 방앗간의 직공이 된다. 방앗간의 직공이 된 크라바트는 위엄이 있어 보이는 직공장인 톤다, 멍청해 보이는 유로, 간교한 뤼슈코, 미할, 메르텐, 한초, 슈타스코, 안드루슈, 페타르, 키토, 쿠보들과 만나게 된다.
   크라바트와 이 열 한명의 직공들은 방앗간에서 마술을 배운다. 까마귀로 변신하기도 하고 말로도 변신하기도 하면서 보통 사람들을 골려 주기도 한다. 마술을 배운다는 것은 그들에게 크나큰 즐거움이다. 하지만 마술을 배우면서 그들이 빼앗기는 것은 자유다. 주인에게 무조건 굴종해야 하며 죽도록 일을 해야 한다. 주인에게 반항하면 찾아오는 것은 죽음이다. 우정과 사랑과 자유를 선택하는 것은 주인에게 반항하는 것이 된다. 그들은 도망칠 수 없다. 주인보다 더 큰 힘을 가지거나 주인의 어두침침한 권력의 힘을 누를 수 있는 숭고한 사랑의 힘이 필요하다.
   비밀만이 가득한 방앗간 생활이 1년이 지나고 크라바트에게 언제나 힘이 되어 주었던 톤다가 죽는다. 크라바트는 방앗간의 규정에 따라 견습공에서 정식 직공으로 임명된다. 정식 직공이 된 크라바트는 방앗간의 비밀을 알게 된다. 한 해가 끝나는 그믐날 밤 열 두 명의 직공 중 누군가가 죽는다는 것을. 그리고 그 직공들은 하나같이 주인 몰래 힘을 키워 왔으며 자유를 얻기 위해 노력한 직공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이 주인에게 노출 되었을 때에도 주인과 타협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두 번째 해에 미할이 흙 무덤들이 늘어선 위쪽 끝자리 무덤에 묻힐 때 크라바트는 친구들을 죽음으로 내몬 방앗간 주인과 대항하기 위해 힘을 기를 것을 결심한다.
   처음에 크라바트가 방앗간 직공이 되었을 때 일은 힘들긴 했지만 지붕이 있는 곳에서 잠을 잘 수 있고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것에 만족해 했다. 거기에다 마술까지 배울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래서 크라바트는 깨닫지 못했다. 자신이 잃어버리는 것이 무엇인지를. 크라바트와 열 한명의 직공들은 분명 이 방앗간의 생산의 주체이다. 생산의 주체임과 동시에 그들은 자유롭게 생각하고 생활할 수 있는 인간이다. 그들 자신이 주인이다. 방앗간의 실질적인 주인이다. 하지만 그들은 보통 사람들과 다른 힘을 가지기 위해 그들의 주체성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크라바트가 톤다의 죽음과 미할의 죽음으로 깨달은 것은 바로 주체에 대한 자각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만큼 톤다와 미할의 우정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자유와 사랑을 얻기 위해 소중한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크라바트가 방앗간 주인이 눈치챌 수 없게 사랑의 힘을 얻게 되는 것은 친구들의 도움이다. 자신이 다른 마음을 먹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려고 일부러 멍청한 척하는 유로는 주인의 악행을 끝장낼 수 있는 방법을 크라바트에게 가르쳐 준다.

    만약 널 사랑하는 소녀가 있다면 그 소녀가 널 구해줄 수 있어. 그 소녀가 주인에게 널 풀어 주라고 청하고 일정한 시험에 통과하면 되는거야…..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소녀가 누구인지 방앗간 주인이 알 수 없게 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크라바트의 마음을 알게 해서도 안 된다. 방앗간 주인이 크라바트가 변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수많은 함정을 파 놓지만 우리의 주인공은 신중하게 행동하여 위기를 넘긴다.
   마침내 결정의 순간이 다가왔을 때 방앗간 주인은 크라바트에게 제안을 한다. 아마도 이것은 작가가 독자들에게 말하고 싶은 핵심이라 할 수 있다. 크라바트가 우정과 사랑을 택하게 되면 잃는 것은 여지껏 배웠던 마술의 힘이다. 다른 직공들이 굴욕적인 삶을 살면서도 참고 견디는 것은 바로 일반적인 사람과 다른 힘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마술의 힘 즉 권력의 힘을 갖기를 원하는 것이다. 주인은 이 점을 알고 크라바트에게 은밀한 제안을 한다. 즉 권력을 나눠 주겠다는 것이다. 자기와 버금가는 자리를 주겠다는 주인의 유혹은 크라바트에게 거절 당한다. 크라바트는 우정과 자유와 사랑을 선택한다. 그는 권력의 달콤한 맛을 얻는다는 것은 다른 직공들의 희생이 따라야만 되는 것임을 알고 있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유이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자신의 의지대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 그 자유는 또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크라바트는 이 모든 것을 잃지 않기 위하여 결정하고 실천한다. 그리고 그는 이긴다. 그의 승리는 톤다와 미할의 승리이고 유로의 승리이다. 우리 모두의 승리이다.

    3
   
처음 이 소설을 접할 때 주변으로부터 소설의 분위기가 너무 음침하고 어둡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방앗간이 있는 검은 숲의 정체나 직공들이 의문의 죽음을 당한 것이 그 이유라 하였다. 하지만 다 읽고 났을 때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음침하고 칙칙한 것이 아니라 내가 알지 못하는 저 먼 옛날의 중세로 들어가 그 신비를 벗겨 나가는 듯한 재미를 느꼈다. 옛날 학창 시절에 읽었던 중세를 배경으로 한 만화들이 생각났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폭력적인 만화와는 달리 그때의 만화는 분명 사랑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주인공들이 고난을 겪는 내용이 많았다. 지금의 아이들도 아마 이렇게 얘기 할 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보는 만화도 우정과 정의를 얘기해요. 알지도 못하면서' 라고. 그렇다면 할 말은 없지만.
   이 소설의 음침하고 어두운 분위기는 작가가 의도적으로 설정해 놓은 것이다. 크라바트가 수많은 역경을 딛고 새로운 선택을 하기까지의 힘든 과정들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들이다. 검은 숲에 둘러 쌓인 방앗간의 위치는 한번 들어간 이상 보통의 힘으로는 빠져 나올 수 없다는 의미이다. 톤다와 미할의 의문의 죽음도 음침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독자들은 톤다와 미할의 죽음에 긴장해가며 크라바트가 그 의혹들을 풀어 나갈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읽어 나간다. 음침함을 밝게, 절망을 희망으로, 어두운 세상을 빛의 세상으로 바꾸어 나가는 작가의 장치들은 독자들에게 통쾌한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그런데 몇가지 걸리는 점이 있다.
   정체가, 아니 분명히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 사건이 의미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끝까지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방앗간에는 죽은 방아가 하나 있는데 가끔 검은 옷을 입고 붉은 색의 닭 깃털을 꽂은 남자가 와서 그 죽은 방아에 무언가를 빻아 가지고 간다. 뼈를 빻는다는 암시가 나올 뿐 정체가 확실히 밝혀지지 않는다. 방앗간의 주인조차 그 검은 옷의 주인공에게 쩔쩔매며 부지런히 그 사람이 가져온 푸대를 나르며 직공들을 사정없이 몰아치곤 한다. 소설의 초반부에 굉장히 중요한 암시인듯 생각했지만 그 이후 그 사람의 정체는 물론 방앗간 주인과의 관계도 나오지 않는다.
   또 하나는 방앗간 주인이 스웨덴과 전쟁을 하고 있는 선제후에게 가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장면이 나온다. 주인은 마술의 힘이 제후나 왕보다 더 우월한 권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하여 크라바트를 데리고 간 것이다. 실제 크라바트도 마술의 힘에 대하여 경이롭게 생각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방앗간 주인의 능력을 설명하기 위한 장치로는 너무 느닷없다는 생각이다. 역사적 배경이나 설정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독일의(정확히 나와 있지 않다.) 한 제후가 스웨덴과 전쟁을 하고 있고 방앗간 주인은 그 전쟁을 부추 키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면 대체 방앗간 주인은 어떤 위치를 가지고 제후를 만나고 있는지 정확한 설명이 되어 있지 않다.
   물론 죽은 방아를 사용했던 검은 옷의 남자나 선제후의 등장이 소설의 신비로움을 강조하는 장치로 사용된 듯 하다. 하지만 그 장치들의 모호함이 마지막에서도 풀리지 않는다는 점이 아쉬운 마음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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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이 아이들 키우기가 힘이 든다고 말하는 이가 많다. 실제로 아이들은 자기 주장이 강하다. 공부만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는 아이들도 많아졌다. 컴퓨터 하나만 잘 해도 먹고 살 수 있다고 그것에 매달리는 아이들도 많다. 학교에 가기 싫다고, 검정고시 보겠다고 쉽게 결심하는 아이들도 많다. 쉬운 결정이라고 말할 때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힘들어 하는 것이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엇을 어떻게 해 주어야 할지 부모들도 선생님들도 잘 모른다.
   또 하나의 선택을 하기까지 그들은 얼마나 힘들 것이며 그 선택의 길이 힘들 때 가지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은 또 얼마나 클 것인가?
   해결의 실마리도 결론들도 없는 결정이요, 선택이지만 분명 그들이 고통스러웠고 아쉬움에 눈물 흘렸다면 아마도 성숙한 모습으로 다시 새로운 선택들을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한 어른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고 믿음이다.
눈 내리는 밤길을 걷는 크라바트와 칸토르카의 여행을, 또 다른 인생의 여행을 떠나는 그들의 뒷모습에 아이들을 겹쳐 보면서, 아이들이 여행에서 돌아올 때 무엇을 가져올지 기대하며 그들의 뒷모습에 축하의 마음을 간절하게 전한다.
 (글 : 이미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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