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소설에 담긴 이야기들

 

1

  무덥고 힘든 여름이다. 아니, 여름이었다. 개인적인 능력부족 탓이겠지만, 너무 많은 일들이 벌려져 있어 하루도 마음이 편치 않은 나날들 이었다. 이사도 가야 하는데 제대로 되지도 않고, 거기다 날씨도 한몫하고 있고 사면초가인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아무 하는 일 없이 지냈다. 이 난국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나? 돌파구가 분명히 있을 텐데.
  그러던 어느날 책꽂이에서 <천년의 사랑>이란 책을 발견했다. 연애 소설이니까 머리 좀 식혀보자는 기분으로 한 장 한 장 넘기며 보기 시작했다. 두 권의 책을 빠른 속도로 보고 난 후 가만히 생각 나는 것이 있었다. 그래, 조금만 더 정성스럽게 살아보자. 그것이었다. 내가 내 삶에 있어서 얼마나 정성을 다했는가? 그렇지 않게 살면서 너무 바라는 것이 많지 않았는가? 이상하게도 겸허한 자세로 돌아와 있었다.   천년의 사랑, 남자 주인공의 삶을 나는 그렇게 해석했다. 자기 자신과 사랑하는 여자를 향한 정성어린 삶! 내가 받은 감동의 전부였다. 한 권의 연애소설로도 나는 그렇게 감동을 받고 지친 삶을 추스리고 있었다.
  문학작품에서 받는 감동, 한 권의 책을 읽고 평생의 지표로 살아간 사람이 있듯이 자신이 어려울 때 우연히 읽은 책에서 힘을 얻어 희망차게 살아나가는 힘, 그것이 문학에서 얻는 힘이 아닐까 한다.
  청소년 책을 비평하고 고민하며 지내온 많은 나날들 중 항상 안타깝고 힘들게 생각한 점이 바로 이 문학의 감동을 어떻게 전달하고, 그리고 얼마나 바른 잣대로 비평을 하고 있는지 였다. 내가 받은 이 감동을 아이들도 느끼면 좋을 텐데, 내가 왜 이 책이 좋은지 바르게 이야기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래서 아이들도 문학의 즐거움, 감동, 고뇌를 느낄 수 있다면, 내 하는 일이 조그마한 일일 지라도 세상을 바르게 세워 나가는데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너무 말머리가 길지 않았나 한다. 자신이 없으면 말이 길어지는 것처럼.
  <아동문학론>(릴리언 스미스/교학사)에서 “우리들이 어떤 책에 대해서 가지는 비평의 시금석은 왜 우리들은 그 책을  좋아하며 또는 좋아하지 않는가? 라고 하는 비평의 왜 이다. 이 ‘왜’ 를 분명히 알았을 때 비로소 우리들은 책의 표면에 그치지 않고, 그 속 깊이까지 읽어 낼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 바르게 좋아하고 바르게 싫어하는 것이 문화의 도달점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즐거움으로 다가갈 수 있는 문학, 아이들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는 성장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나의 그릇 만큼, 아니 조금은 넘치게, 이야기 하려 한다. 우연히 읽은 한 권의 성장 소설에서 아이들도 힘을 얻기 바라며.


2

  성장소설은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성장소설은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다. 하나는 실제로 자신이 겪은 일을 바탕으로 쓴 것이고 또 하나는 있음 직한 일을 기본 테마로 하여 쓴 허구적 소설이다. 중요한 것은 성장 소설이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겪었을 다양한 고민들을 담아내고 있다는 데에 있다. 나만 하는 고민인줄 알았는데 다른 아이들도, 청소년 시기를 거친 부모님들도, 다른 모든 사람들도 똑같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 그리고 한번쯤 닥친 위기들을 위태롭고 아슬아슬 하지만 주위의 도움이나 자신의 힘으로 잘 헤쳐 나가고 있다.
  성장 소설에는 또 그 시대의 배경 사회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경우가 많다. 어느 사회나 선과 악이 공존한다. 선과 악으로만 바라볼 수 없는 문제들도 많다. 초등학생과 달리 청소년 시기에는 이러한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자유로울 수 없다. 때로는 순응 하면서 사회에 아무런 저항 없이 적응 될 수도 있지만 비판적 시각을 가진(어른들은 이유 없는 반항이라고도 하고 쓸데없는 불만이라고도 하지만) 아이들도 많다. 그 아이들에게 사회를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고 발전적인 비판을 할 수 있게끔 하는 안목을 부분적이나마 제시할 수 있는 책이 성장 소설이다. 우리의 역사나 사회를, 다른 나라의 역사나 문화를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매우 중요한 일이다.
  대부분의 성장 소설은 관찰자의 입장에서 쓰여진다. 주변의 어른들의 모습, 그들은 항상 존경스럽지만은 않다. 불량스럽기도 하고 몰지각한 사람도 있다. 하지만 삶에 지친 안쓰러운 어른들도 있다. 현실에 안주하며 나처럼 살면 편안하다고 부르짖는 모습도 있다. 좀 더 올바르게 살아 갈려고 애쓰는 모습도 있다. 그 속에서 아이들은 자신의 입장을 올바르게 세우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점 때문에 즉, 다양한 인생들을 접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있기에 누구에게나, 독서 수준에 관계없이, 책하고 친해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쯤 되면 마치 내가 성장 소설의 예찬론자가 된 느낌이다. 뭐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좋은 건 좋은 거니까. 하지만 중요한 것은 탄탄한 구성력을 바탕으로 잘 쓰여진 소설에서 주는 매력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올바른 사회의식을 가진 작가, 아이들의 세계를 이해하고 있는 작가, 그 안에서 소재를 잘 선택하고 있는 작가들에 의해 쓰여진 좋은 책을 골라낼 수 있는 비평가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전문가의 눈이든 독자의 눈이든 왜 이 책들이 좋은지 내면까지 흟을 수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비평가의 자세 말이다.
  이제 우리 작가가 쓴 성장 소설,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과 <아홉 살 인생>을 중심으로 아이들의 고민이 어떻게 녹아 있는지, 과연 그들의 눈높이로 세상을 바라보는지, 고민들과 위기들을 어떻게 풀어나가는지, 그리고 사회를 어떻게 비판을 하는지, 어떠한 감동과 즐거움이 있는지 살펴 보도록 하겠다.

 

3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최시한 님의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은 고등학생을 주인공으로 쓴 다섯 편의 연작 소설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선재는 별명이 철학자라고 불릴 만큼 생각이 많은 아이다. 물론 본인은 철학자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철학이 엇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철학도 문학도 좋은 대학 가서 그 다음에 하라고, 쓸데없는 생각하지말고 공부나 하라는 선생님의 말에 속이 상하다. 좋은 대학에 가야만 철학을 할 수 있다면 대학이 없었을 때에는 사람들은 철학과 문학을 하지 않았을까 반문한다. 왜 모든 것을 대학과 연관 지을까? 선재는 답답하다.
  선재는 부모 없이 결혼을 앞둔 누나와 함께 산다. 누나는 자신이 대학을 나오지 않았어도 남 못지않게 살아왔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처럼 좋은 대학에 못 들어 가면 인생이 끝나는 것처럼 얘기한 적은 없다. 하지만 제 앞가림을 잘 하기 위해서 선재가 한눈 팔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길 바란다. 제 앞가림이란 게 뭘까? 선재는 생각한다.
  선재는 토론이 있는 국어시간이 좋다. 국어 선생님은 왜냐 선생님이다. 허생전 수업이 있는 국어시간에 선생님이 들어오시지 않는다. 왜냐 선생님이 가입한 노동조합 때문이다. 담임 선생님이 오셔서 자습을 해라, 너희들은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되니까 쓸데없는 관심 갖지 말고 공부나 하라는 지시를 하고 가신다. 공부나 하라는 말에 선재는 슬프다.
  친구들이 토론을 한다. 공부든 운동이든 욕심이 많은 동철이 토론을 주도한다. 국어 선생님을 비판하는 것이다. 매사에 자신이 없고 말까지 더듬는 윤수가 선재에게로 온다. 너는 국어 선생님 편이면서 왜 동철의 말에 반론을 하지 않느냐고. 선재는 선생님 편이지만, 동철의 말이 옳지 않다는 걸 알지만, 왜 옳은가를 조리 있게 내세울 말이, 아니 아는 게 없어서 곤혹스럽다. 국어 선생님은 학교를 떠난다. 그리고 윤수도 떠난다.
  선재의 답답함, 선재의 의문, 선재의 슬픔, 곤혹스러움,누구나 한번쯤은 가졌을 마음들이다. 왜 무조건 공부만 해야 하는지 대학말고는 다른 대안은 없는지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다.경쟁하여 이기고 이긴 아이만이 인정 받고 그 대열에서 낙오된 아이는 무시당하는 현실에서 올바른 우정은 어떤 것인지 아무도 얘기해주지 않는다. 올바른 생각을 하는 선생님은 왜 학교에서 배척 당해야 하는지 아무도 설명해 주지 않는다. 스스로 찾아내고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선재는 섬으로 떠난다. 여름 한 달 동안 섬에서 지낸다. 윤수가 학교를 떠나기 전 한 말의 의미를 생각한다. 각자의 촛불을 끄면 아무도 패배하지 않는다. 그 말이 바로 자신이 찾던 말 같다는 생각을 한다. 윤수의 편지를 받는다.

“~정해진 시간, 준비를 하도록 주어졌던 시간이 다 지나가버렸으니까. 이제 준비시간은 없다. 아니 본래부터 그런 시간은 없었다. ~방황을 하더라도 그게 바로 내 삶이다. 내가 선택한 삶 때문에 용서를 구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오로지 믿음으로만 존재하는 앞날에 우리 다시 뜨겁게 만나기로 하자.”

  선재도 돌아온다. 누나 곁으로. 아니 거센 비바람 속으로 나아간다.
  갈등과 방황들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끊임없는 자기 성찰을 통해 선재는 새롭게 태어난다. 어떤 결론을 내렸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거센 비바람을 헤쳐 나왔으므로, 그리고 다시 달려나갈 준비가 되어 있으므로.

 

4

  위기철님의 소설 <아홉 살 인생>은 인생이 아홉 살에 시작되었다고 믿는 어느 꼬마의 인생 이야기이다. 아홉 살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조숙하다고 느껴지기는 하지만 작가가 스물 아홉해 동안 살아오면서 느끼고 배웠던 인생 이야기를 아홉 살짜리를 통해 정리한 것이기에(작가도 그렇게 이야기 했다) 다소 위안이(?) 된다.
  지나치게 행복했던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세상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이 꼬마, 아니 여민이는 말한다. 낯설기만 한 산꼭대기의 집으로 이사 온 날 여민이는 어머니에게 왜 우리집은 가난하냐고 묻는다. 하지만 조숙한 이 소년은 어른들이 가난이란 말만 들으면 금세 표정이 어두워지곤 하므로 금방 질문을 물리고 만다. 그렇게 산동네에서의 여민이의 인생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 곳에서 여민이는 기종이를 만난다. 기종이는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누나와 단 둘이 살고 있는 상상력이 풍부한(어른들은 아마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아이라고 할 것이다) 아이다. 별명은 씻지 않고 다녀 시궁창이다. 여민이는 기종이가 하는 무수한 상상의 말들을 거짓말 하지마 라고 소리쳐 주고 싶지만 기종이가 실망할까 봐 하지 않는다. 여민이가 우연하게 미술대회에서 상을 타게 되면서 오로지 칭찬 받는 것에 몰두할 때 기종이는 내 말을 끝까지 들어준 사람은 너 뿐이었다며 다시 돌아와 주기를 바란다. 산동네 아이로 말이다. 자기가 즐거워서 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어른들에게 칭찬 받기 위해서 하는 일들이 얼마큼 피곤한 일이고 위선적인 일인지 기종이는 알고 있었을까? 어쩌면 나중에 상처 받는 사람은 여민이 뿐이라는 걸 알고 있었을까? 기종이가 떠날 때 여민이에게 말한다. 너는 나보다 뻥을 잘 까니까 훌륭한 화가가 될 거라고. 여민은 생각한다. 거짓말쟁이가 나에게 진실 이상의 것들을 가르쳐 주었다고.
  아홉 살 여민이 주변에는 어른들이 있다.
  먼저 아버지. 아버지는 총각 시절에는 깡패였지만 어머니를 만나 사람답게 살려고 하는 정의파 아버지이다. 하지만 세상은 착하게 살려고 하면 더 어려운 일이 있다던가? 밀린 월급 떼이고 그 덕분에 어머니까지 눈이 멀게 되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보답 없이 어려운 사람들 도와주며 열심히 살아가는 아버지에게서 여민이는 든든함과 함께 포근함을 느꼈으리라. 그리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어머니에게 위안을 받고 어머니를 끝까지 지켜주려는 용맹스러운 기사가 되리라 마음먹기도 한다.
  그리고 학교 선생님이 있다. 월급 기계인 선생님은 아이들 보다는 학부모에게만 신경 쓰는 사람이다. 기계적으로 아이를 때리는 선생님, 잔소리 하는 것조차 귀찮은 선생님, 교장 선생님에게만 잘 보이면 되는 선생님. 우리들 기억에서도 낯설지 않는 선생님이다. 아이는 그 선생님을 보면서 아이러니 하게도 그 반대의 세상을 꿈꾸지 않았을까? 아이를 기죽지 않게 하고 조그마한 일이라도 칭찬하며 인정 사정 없이 패는 게 아니라 진짜 사랑의 매를 원하지 않았을까? 아이는 몰지각하고 존경스럽지 않은 모습을 보며 세상이 험난하고 어려운 길임을 인정하고 결코 그들이 옳지 않음을 알아챌 것이다. 진실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꿈 꿀 것이다.
  여민이의 인생은 아홉 살에서 끝나지 않는다. 인생은 계속된다. 죽을 때까지. 어쩌면 우리는 인생이 끝날 때까지 참다운 인생을 살지 못할련지도 모른다. 한 살 한 살 먹어가며 전에는 느끼지 못하는 인생의 무게를 느낄 것이고 진실도 발견할 것이며 많은 좌절과 방황을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삶의 기쁨도 느낄 수 있을 것이고 환희도 있을 것이다. 여민이의 인생이 아홉 살에서 끝난 게 아니라 열 살 인생도 있고 열한 살 인생도 있고 그리고 쭉 이어지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도 아이들의 인생도 지금이 다가 아닌 것이다. 너무나 흔한 말이지만 미래가 있다는 것은 굉장한 행운이다. 무언가 할 수 있으므로.

 

5

  두 권의 성장 소설을 여러 각도에서 다양하게 접근 하려는 처음의 시도와 달리 한 쪽 발만 담근 것 같은, 건드려 보기만 한 것 같아 아쉬운 생각이 든다.
  우리 작가의 작품을 선택한 것은 우리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더 큰 공감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어릴 적 모습이고 내가 학교 다니면서 겪었던 일이었다. 항상 고생하시는 부모님과 함께 였고 선생님의 모습도 또한 그러했다. 친구들의 모습 또한 같았고 많은 인간 군상들의 모습도 같았다. 그래서 공감할 수 있었고 재미도 있었다. 아이들도 낯설지만은 않은 다양한 인생들과 다양한 경험을 만나며 조금은 큰 자기를 만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제 부모 세대나 선배들의 성장 이야기만이 아닌 지금의 아이들의 모습, 고민들을 다양하고, 진솔하게 담아낸 소설들이 많이 나와 주었으면 한다. 그래서 즐거운 마음으로 아이들과 함께 그 작품들을 감상하고 비평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글 : 이미숙)
 

다른 목록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