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

박상률 글/사계절

 
  
 1
  소설의 주인공인 훈필의 나이와 같은 13살 때 '봄'에 관한 한 기억이 있다. 바람은  따스했지만 아직 봄이라고 하기에는 추운 날씨였다. 선생님께서 종례 시간에 "봄이 되었는데 우리 반 여자아이들은 센스가 없다. 옷이 왜 아직도 그 모양이냐?, 화사하게 입지 않고…" 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때 나는 무척 부끄러웠다. 무척 탁한 옷을 입고 있었으므로… 그리고 갈아 입을 센스 있는 화사한 봄 옷이 없어서. 선생님 기대에 못 미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에 봄바람의 훈훈함과는 다르게 내 마음은 얼어버리고 말았었다.(반감이 생기기도 하였다. 겉 모습이 그렇게 중요한가라는)
  소설 <봄바람>을 읽으면서 문득 그 생각이 나는 것은 왜 일까?
  그것은 아마도 훈필의 맑은 꿈과 희망의 세계에 대한 동경이, 내가 13살 때 느낀 열등감을  풀어버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은 아닌지…

    2
  아이들은 가출을 해 보고 싶은가 보다. 가출하고 싶다는 말을 달고 다니는 아이가 있다. 아이가 가출하면 찾을 거냐고 물어보는 아이도 있다.
  "우리집은 죽어도 안 찾을 거예요"라고 하는 아이가 있다.
  "나가는 건 쉬워도 들어오는 건 어렵데요"라고 말하며 웃는 아이도 있다.
  한 번쯤은 가출이란 단어를 생각하며 아이들은 끊임없이 마음 속에서 가출을 하나보다.
  소설 <봄바람> 속에서 훈필도 가출을 한다.
  섬이지만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마을의 아이 훈필과 훈필 나이 또래의 아이들은 봄바람과 함께 뭍으로(목포다), 서울로 떠나버린 형들, 언니들을 부러워 한다.
  봄바람과 함께 떠났던 은주언니의 귀향은  뭔가 있을 것 같은, 새로운 희망으로 생각했던 가출이 순탄치 않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아직 그들은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아이들은 무조건 가출을 생각하진 않는다. 좌절이 있거나 현재의 생활이 만족스럽지 못할 때 가출을 꿈꾼다. 훈필에게도 그리고 훈필 이전에 집을 나가버린 동네 형과 누나들에게도 좌절이 있었다. 아니 좌절이 있기 전에 희망이 있었다.

 "자 훈필아, 이 염소를 잘 키워서 새끼 좀 늘려봐라. 그래야 니가 중학교도 가고 고등학교도 갈 수 있는 것이여. 염소는 순한 짐승인께 기르기가 그리 어렵진 않을 것이여.(38쪽)

  학비 밑천이어서가 아니라 염소 울음소리부터 좋아진 13세 소년 훈필은 염소를 통해 점차 농업학교에 대한 기대와 푸른 목장 주인을 생각하며 꿈을 키웠다. 그러나 소년의 바람과 희망은 염소의 죽음으로 끝이 났다. 그리고 훈필은 가출을 한다. 또 다른 성공을 하기 위해서…
  훈필과 같은 마음일 때 아이들도 마음속으로 여러 번 가출을 한다. 그리고 지우고 다시 그리고…우리의 훈필은 아이들의 마음이다.
  훈필의 가출, 성공이 있을 것 같은 미지의 세계는 결코 순탄치 않았다. 그 세계는 결코 만만한 세계가 아니었던 것이다.

 나지막하나 거친 시비조의 목소리였다. 하마터면 난로에 이마를 찧을 뻔 하면서 잠을 깼다. 검게 물들인 군대 야전 점퍼를 입은 청년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191쪽)

  하지만 냉정하고 비정한 그 미지의 세상에도 사랑은 있었다.

 "여기 자빠져 있다가 집에 다시 가라니께 말 안듣고 기어 나가더니 하루새에 거지꼴을 해 갖고 들어왔구만. 세상에! 이 꼬라지 좀 봐"(196쪽)

 그리고 묵묵히 지켜만 보고 있던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도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어머니의 눈시울이 붉어졌다는 것이고…(200쪽)

  훈필이는 훈필이 자신을 사랑했고, 훈필이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 그의 첫 번째 방황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끝은 아니리라. 북풍같은 회오리 바람은 불어올 것이다. 봄바람이 어느덧 온 세상을 장악하여 겨울을 밀어내듯이 훈필이도, 아이들도 더 강한 힘으로 밀어나갈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작가는 담담하게, 그리고 따뜻한 시선으로 전달하고 있다.

     3

  봄이 되면 훈필의 마을로 들어오는 이가 있다. 꽃치다. 망태기에 꽃을 넣고 다니는 동냥치.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그를 꽃치라 한다.
   꽃치는 말이 없다. 노래만 부를 뿐이다. 마을 사람들이나 아이들은 자신들과는 다른 꽃치에게 두려움을 느낀다. 하지만 어느덧 그의 존재를 인정해간다. 밥을 얻어먹고 그 보답으로 일을 해주고, 그를 주저 앉히려는 노력만 보이면 그는 말없이 다시 사라져 버린다. 훈필에게도 그는 호기심의 대상이다.
   나에게도 그는 단순한 동냥치로 느껴지지 않았다. 세상에서 소외된 사람이기는 하다. 하지만 꽃치는 자신을 그대로 인정해 주기 바라면서, 아니 바라기 보다는 남을 인정해 주며 세상을 살아간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남과 조금이라도 다르다는 생각만 들어도 남과 같아지기 위해 애를 쓴다. 그러나 꽃치는 남과 같아지려고 애를 쓰기는커녕 같아지라고 권하는 말만 들어도 사람들에게서 도망가 버린다.(112쪽)

  작가는 꽃치를 통해 순수한 영혼을 얘기하고 싶어했는지 모르겠다. 왜 그렇게 사는 건지, 어디로 가는 건지 모르게 그는 마을을 떠났지만 영원한 자유인으로 그를 그리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꽃치를 표현하는데 있어 너무 추상적·관념적으로 그리고 있다. 그래서 인물이 현실적으로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작가는 말없는 꽃치와 말 많은 선생님을 대비시킨다. 노총각인 담임 선생님, 그는 아이들에게 정신교육을 시키기 좋아한다. 이 말 많은 선생님은 농촌이 못사는 것은 농촌 사람들이 게으른 탓이라며 정신상태를 뜯어 고치려는 듯 정신교육에 몰두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무 헤퍼서 탈이에요. 조금만 더 신경을 쓰면 낱알을 흘리지 않고… (중략) … 밀레의 정신을 본받도록 해요. 그러니까 내말은 보리이삭을 주워오라는 거예요. 그래야 우리나라도 프랑스처럼 잘 살 수 있는 거예요…"(60쪽)

  "그러나 누구하나 이삭 줍기를 한 사람은 없었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들은 결코 헤픈적이 없고 건성건성 일하는 경우도 없었다. 주울래야 주울 이삭이 없었던 것이다." (61쪽)

   선생님의 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가벼움! 남을 인정하지 않고, 현실을 직시하지도 않으며, 정체도 알 수 없는 철학을 가르치고 있는 선생님!
   꽃치와 선생님의 이 극명한 대비는 우리를 반성하게 만든다. 부끄럽게 만든다. 잔잔하지만 단호한 어른세계에 대한 작가의, 아니 훈필의 비판으로 받아 들여진다.
   훈필이 가출 후 집에 돌아와 있을 때, 길에서 문득 마주친 꽃치는 훈필에게 이렇게 말한다. “꽃이 아름답지 않냐!” 꽃치에게 들은 처음이자 마지막 말이다. 훈필은 그 말에서 꽃냄새를 맡는다. 희망인 것이다. 그를 그리워 하는 것도 ‘희망’에 대한 그리움이다.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다. 그리고 작가는 우리에게 ‘봄바람’이라는 희망을 남겼다.

    4
  
 처음 <봄바람>을 만났을 때 너무나 반가웠다. 여지껏 번역된 다른 나라 성장소설을 많이 읽었다. 그러한 책들을 좋은책들이라 평가하며 우리나라에서도 청소년들이 읽을 수 있는, 우리 이야기를 쓴 소설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래서 반가움은 컸다.
   우리의 이야기였기에 너무나 익숙하여 웃음이 나왔고, 내가 해왔던 고민들을 훈필이 하기에 소설 속으로 빠져들 수 있었다.
   시대 상황이 달라서 아이들이 생경해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톡톡 튀는 아이들에게 지루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선진국으로 가기 위하여 돈 버는 일에만 급급하여, 알맹이가 빠져버려 허우적거리는, 철학이 없는 나라를 만들어버린 우리 어른들이 지금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아이들 스스로 자신을 경영할 수 있도록 자기 자신의 철학을 구축할 수 있게끔 도움을 줄 수 있는 한 권의 책, 미약하지만 여기서 해답을 찾아보려고 한다.
(글 : 이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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