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 찾아오면 의자를 내주세요

미리암 프레슬러 글/유혜자 옮김/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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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선생님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요즘 매스컴에서도 떠들어대는
교실붕괴에 관한 이야기였다. 교실에서 어떤 아이가 한 아이를 패고 있길래 하지 말라고 하였더니 도리어 그 여선생님에게 욕을 하드란다. 남자 선생님 이었으면 그렇게 대들지 않았을 거라며 그 아이의 야비함에 대하여 슬픈 얼굴로 얘기하셨다.
 
 나이를 먹어도 아직은 선생님 보다는 아이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황폐한 나의 학창 시절이 떠 올랐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선생님들은 관심이 없으셨다. 무엇을 고민하는지, 선생님의 말 한마디에 어떤 상처를 받는지 도무지 관심이 없으셨다. 그렇다고 공부를 열심히 시키시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 선생님들에게 우리도 점점 관심이 없어졌다.
  
 여선생님에게 욕을 해댄 그 아이는 아마 선생님에게 관심이 없는, 애정이 없는 아이였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에게도 애정을 갖지않는 아이일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그런 아이일지라도 보듬어 안고 가야 하는 현실이다.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 이야기를 해 주신 선생님도 그렇게 말씀하셨다. 힘든 상황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래도 지켜내야하는 것은 아이들이다 라고.

     2
   
독일 청소년 문학상 수상작인 <행복이> 는 14세의 한 소녀 이야기이다. 할링카는 엄마의 학대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엄마는 병원에 수용되고 할링카는 고아원을 거쳐 같은 처지의 아이들이 수용되어 있는 기숙학교에 맡겨진다. 할링카는 친한 친구도 없고 친구를 사귈 마음도 없다. 오직 자신의 마음을 달래주는 이모만이 유일한 탈출구다.
   
우스운 이야기가 하나 있다. 가장 난폭하고 무서운 집단은 여중생들이고 그 다음은 여고생들이며 그 다음은 남고생, 가장 무섭지 않은 집단은 남중생이란다. 아이들이 만드는 영화에서도 여중생들이 만든 영화가 가장 폭력이 난무하고, 학교에서의 그들의 모습도 그러하다고 한다. 사실인가? 내가 지나온 시절을 생각해 보면 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다. 그만큼 세상이 변한 것일까? 왜 그럴까 생각해 봤다. 중학생 시절은 아동기를 벗어난 혼란의 시기라 할 수 있다. 아직 준비는 안 되었지만 자기 힘으로 세상을 대면하는 첫 단계라 할 수 있다. 특히 여자 아이들은 생리를 시작하면서, 갑자기 어른 대접을 받는 시기다. 몸가짐에 대한 지나친 조심스러움을 요구 받는 시기다. 천진난만하게 세상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주어진 여자라는 울타리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의 혼돈을 가져올 수 있다. 스스로 경험하고 판단하여 만들어 가는 세계가 아닌 타의에 의해 주어진 많은 가치관들을 수용하기가 힘들었으리라. 그래서 반항(?)하고 있는 것일까? 난폭이라는 이름으로. 
   
<행복이>의 할링카의 세계도 우리 아이들의 외형적인 삶의 모습과는 틀리지만 내면의 세계는 같은 선상에 있다. 같은 처지는 아니지만, 더 나은 환경에 살고 있지만 할링카나 우리 아이들이나 삭막하기는 마찬가지다. 닫혀 있다. 상처 받지 않기 위하여 자신을 무장하고 있다.

   정말로 나는 친구를 원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중에 아이들 모두를 기억하고 싶지도 않다. 전부 잊어버리고 싶다.~ ~ 아니. 나는 레나테가 친구가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무엇 때문에 인생을 쓸데없이 피곤하게 만든단 말인가? 힘도 세지 않은 친구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런 사람은 단지 해만 것이 너무나 명백하다.

 어쩌면 할링카는 겁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가장 사랑 받아야 할 엄마에게 학대 받은 경험 때문에 마음의 문을 닫아 걸고 있다. 나중에 실망하지 않기 위하여 기적 같은 것은 바라지 않는 할링카의 마음처럼 우리의 아이들도 세상을 겁내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난폭하게 변하고 있는 것이다. 어기짱 놓는 어린아이처럼 어른들에게, 사회에, 세상에 소극적인 반항을 하고 있는 것이다.

    3
   
이 소설의 미덕은 할링카의 변화이다.
   
친구를 사귀지 않겠다던, 마음의 문을 닫아 걸었던 할링카는 변화하기 시작한다. 자신만의 비밀공간으로 레나테를 데려가면서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다. 친구를 위해 엘리자벳을 혼내주기도 한다. 할링카는 자신에게 따뜻한 말을 해주는 레나테를 친구로 받아들이고 드디어는 친구를 위해 싸우기도 하는 것이다. 눈가가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지만 친구를 위하여 그리고 자기 자신을 위하여 당당한 싸움을 한 것이다.
  
 외로웠던 소녀가 자기의 세계를 열어가면서 얻은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행복이다. 이모 외엔 사랑을 주고 받을 사람이 없었던 소녀가 친구와 우정을 쌓아가면서 얻은 것은 행복이다. 그냥 얻어낸 것이 아니라, 쉽게 얻어낸 것이 아니라서 더욱 빛이 난다. 힘이 세다는 이유만으로 아이들을 놀려대는 비열함에 맞서 싸워 이긴 할링카의 모습은 우리에게 통쾌함을 준다. 그렇게 얻은 조그마한 행복은 이제 할링카를 더욱 굳세게 만들었다. 이제 할링카는 더 큰 행복을 만들기 위하여 준비를 할 것이고 그 희망은 우리에게 작은 기쁨을 준다.
   또 다른 할링카의 변화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이다
. 그것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다. 어머니 쉼터모금을 많이 한 상으로 피크닉을 가게 된 할링카는 그 곳에서 아름다운 세계와 첫 대면을 한다. 공원에 세워진 아름다운 석상에 넋을 잃고 눈물을 흘리는 할링카의 모습은 이제까지 자신이 얼마나 좁은 세계에서 살아왔는지 깨닫게 해준다. 얼마나 아름다운 것들이 많이 있는가! 자신이 느껴야 할 세상은 또 얼마나 넓은가! 내가 알고 있는 것만으로 세상을 생각할 수 없다는 그녀의 새로운 인식은 그녀를 변화하게 만드는 초석이 될 것이다.

제대로 곰곰이 생각을 모으면 모든 것을 상상할 수 있다던 로우 이모의 말은 틀린 말이야. 이 곳에서 내가 본 것들은 전혀 모르는 것이었기 때문에 도저히 상상이 불가능했잖아?……내일요, 이모 내일은 절 믿으셔도 좋아요.       

할링카가 공원의 석상에서 느끼는 아름다움의 실체가 명확하게 그려져 있지는 않다. 그녀의 눈물이 느닷없는 것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도 가끔 할링카와 유사한 경험들을 하게 된다. 잘 알지 못하는 연주를 듣다가도 갑자기 알 수 없는 눈물이 쏟아지기도 한다. 그것은 아마 감동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져도 무방하리라. 할링카의 눈물은 많은 의미로 해석되어질 수 있다. 삶에 대한 감동이어도 좋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흠모의 감정이라 해도 좋다. 중요한 것은 할링카가 얻은 이다. 앞으로 살아갈 힘이다. 힘들어도 새로운 세계를 준비하는 힘을 그녀는 얻어냈다. 자신의 힘으로.

 4
   청소년 아이들이 읽는 책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는 하지만 아이들을 따라 잡기에는 너무 벅차다. 별수없이 나는 아이들이 얘기하는 구태의연한 기성세대 구나 라는 생각을 하루에도 수 차례 한다. 화를 잘 내는 아이들도 이해가 잘 안되고 몰라요 그냥요 라고 밖에 하지 않는 그들의 대답도 답답하기만 하다. 그래, 내가 이해해야겠지. 지네들은 얼마나 힘들겠어 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아무 생각 없는듯한 그네들의 행동을 보면 마구 화가 나기도 한다.
   하
지만 내 어릴 적 생각을 해보면 나도 어른들과 대화를 하지 않았다. 잔소리 해대는 어른들이 밉기도 했지 않았는가? 나만의 세계에서 빠져 나오지 않고 웅크리며 살지 않았던가?
   외로웠던 소녀가 하나하나씩 자기의 세계를 열어 가면서 행복을 얻게 되는 이 소설을 보면서 아이들도 같은 체험을 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 <행복이> 라는 소설을 읽으면서 독후감을 쓰는 체험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생활에서 스스로 행복을 준비하는 그런 체험을 했으면 좋겠다. 아이들은 할 수 있을 거다. 왜냐하면 그들은 순수하기 때문이다. (글 : 이미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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