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책은 교육 교재가 아니다!

 

  그림책은 아이가 태어나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책이다. 이 말은 결국 그림책이 아이들한테 얼마나 중요한지를 단적으로 나타내주는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많은 부모님들은 그림책의 중요성에 대해 나름대로 인식을 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전집 시장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아직까지 전집 판매가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 바로 유아를 대상으로 한 그림책 시장이다. 일반적으로 아이가 태어나면, 특히 첫애가 태어나면 많은 집에서 그림책을 전집으로 들여놓는 경우가 많다. 별로 전집으로 구입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가도, 주변 사람들이 다 이 책을 들여놓았다거나 혹은 아이들은 그림책을 통해 많은 걸 배우게 된다는 영업사원들의 말을 듣고,  '혹시 내 아이만 이 책을 안 봐서 뒤떨어지면 어떡하지?'하는 걱정이 생겨 다시 큰맘을 다져먹고 들여놓기도 한다.
그리고, 아이한테 그림책을 보여준다. 기왕 들여놓았으니 아이한테 열심히 보여줘서 본전(?)을 찾아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주변에는 이제 3-4살밖에 안 된 아이들이 그림책을 읽는 모습을 심심치않게 보기에 우리 아이도 빨리 책을 읽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전집이 아니라 단행본으로 그림책을 구입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림책은 많은 부모님들은 아이가 그림책을 통해 뭔가를 배워나가기를 바라며 조금은 비싼(동화책들보다) 그림책을 사게 된다.
그래서 열심히 아이에게 그림책을 보여주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 이런 모습이 자주 눈에 띤다.

  • 아직 글을 다 읽지도 않았는데 아이가 책장을 넘기려고 하면 "아직 다 안 읽었잖아? 읽고 넘겨야지."하며 아이가 책장을 못넘기게 한다.
     
  • 그림책을 읽어주며 글씨를 한자 한자 짚어준다. 텔레비젼 광고에서 본 아이처럼 우리 아이도 신문을 보며, "엄마, 청와대가 어디예요?" 같이 좀 수준높은(?) 질문을 하게 되질 바라며 말이다.
     
  • 그림책을 읽어주는 중간 중간에 아이한테 질문을 던진다. "이게 뭔지 알아?", "자, 여기 원숭이가 몇 마리 있나 한번 세어볼까?" 등등.
     
  • 그림책을 보여주고 나서도 "재미있었니? 어느 부분이?", "그래, 그렇게 나쁜 짓을 하니까 벌을 받지? 너는 그러면 안 돼!"하며 뭔가 아이를 가르치려 한다.
     
  • 책에 관심없어 하는 아이를 붙들고, "너, 이 책이 얼마나 재미있는데 안 보려고 하니? 자, 엄마가 읽어줄게 잘 봐!"하며 반강제로 아이에게 그림책을 보여준다.

  게다가 요즘은 한 가지 더 늘어난 게 있다. 바로 그림책을 통한 영어 교육이다. 조기교육에, 외국어는 어려서 배우는 게 좋다는 인식이 널리 퍼지면서 영어를 배우는 연령이 점차 낮아져 유아에게까지 내려온 것이다. 언제부턴가 텔레비전에서 유아 프로그램을 보면 우리말을 배우는 시간은 없어도 영어를 배우는 시간은 꼭 있어서 황당함을 느끼게 했는데, 요즘은 그림책을 이용한 영어 교육까지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런 그림책을 통한 영어 교육이 유아의 영어 교육에 충분히 효과를 거둘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그림책은 글을 몰라도 그림만으로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으니, 영어를 못하는 유아도 영어 그림책을 충분히 볼 수 있을 것이고, 짤막한 그림책의 문장 덕분에 언어 습득율이 뛰어난 유아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영어와 친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도 모든 언어의 기본은 '모국어', 즉 우리말에서 출발하고, 우리말을 잘 하는 사람만이 외국어도 잘 할 수 있다는 내 신념에 비추어 볼 때 씁쓰름한 일일 수밖에 없다. 유아에게 원어로 그림책을 읽게 한다고 그 아이가 원작(영어)의 맛까지 느끼는 건 아닐 테고, 아무래도 작품 감상 쪽보다는 영어 학습에 중심이 갈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문제는 어른들의 이런 모습이 고민도 되지만, 때론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태어나서 처음 만나게 되는 그림책을 보며 아이들이 즐거움보다는 학습을 강요받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정말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경쟁사회에서 자신의 아이가 뒤처지지 않기를 바라는, 아니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앞서 나가길 부모님들의 입장을 생각한다면 찬성까지는 아니라도 조금은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 분위기가 너무나 광범위하게 퍼져 있어 어쩔 땐 두려운 생각도 든다. 때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분위기에 젖어서 '아무런 생각없이(!)' 아이에게 그림책을 통한 학습을 강요(?)하는 경우도 생긴다.

  물론 사물 그림책이나 지식 그림책처럼 겉으로 봤을 때, 학습을 위한 그림책들도 있다. 이런 책들은 엄격한 그림책의 잣대(그림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로 봤을 땐 그림책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일반적인 범주에서 볼 때 모두 분명히 그림책이다. 하지만 이런 책들도 이 책을 보는 유아들에게 즐거움을 주어야 한다는 그림책의 본연의 임무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호기심이 왕성한 아이들은 새로운 걸 알아 나가는 가운데서 또 다른 즐거움을 얻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런 사물 그림책이나 지식 그림책 역시도 아이에게 학습을 강요하는 방식으로 보여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태어나서 처음 만나게 되는 그림책은 아이들에게 학습 교재로서가 아니라 꿈과 희망과 기쁨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 아이들은 그림책에서 온갖 상상의 날개를 펴기도 하고,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경험을 하기도 하며 기쁨을 얻는다. 새로운 걸 알게 되는 기쁨도 얻는다. 그 모든 건 외부의 강요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그림책을 유아들의 마음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림책은 글을 모르는 아이들이라도 이런 기쁨을 만끽할 수 있는 책이다. 그림책 속의 이야기는 글이 없어도 그림만으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그림을 보고 어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속에 자신만의 이야기 세계를 펼쳐나간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어른들이 보기엔 아이들이 재미있어 하기는 하지만 아무런 교육적 효과도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아이들은 그림책을 통해서 새로운 세계와 만나고 이를 자신의 세계로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어른들은 흔히 교육을 '아이들이 당장 어떤 지식을 습득하게 하는 것'으로, 즉 눈앞에 보이는 근시안적인 학습 효과쯤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사회 분위기가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결과다.
  하지만 아이들은 다르다. 어른들의 눈으로 볼 때 겉으로 들어나지 않아 조바심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지만 아이들은 그림책을 보고 즐기며 자기 자신을 키워나간다.
  그런데 어른들이 이를 놓치고 당장 눈앞에 나타나는 효과만을 기대하고 아이들에게 어른들의 기대감을 만족시켜 주길 강요(!)하며 그림책의 즐거움을 빼앗아 간다면?
  아마도 지혜보다는 지식의 힘만을 믿고, 남을 판단해 시시비비를 가릴 줄은 알아도 자신은 되돌아보지 못하고, 아니 어쩌면 책이란 단순히 학습의 수단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이라는 생각에 책 자체와 친해지기 어려워질 수도 있지 않을까 걱정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림책과 이후 커가면서 읽게 될 많은 동화책들을 통해 얻게 될 즐거움을 모른 채 정서적으로 무미건조한 그런 사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반면 그림책과 유아의 즐거운 첫 만남은 아이들이 스스로 키워 나가는 든든한 '힘'이 된다. 성장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어려움과 만나게 됐을 때, 이를 해결하고 견뎌 나갈 수 있는 힘 말이다. 물론 겉으로 들어나 보이지 않아, 의심스러운 어른들의 눈으로 보자면 왠지 불안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아이들의 무의식의 세계에는 아이들이 그림책을 보며 스스로 쌓아나간 자아가 고스란히 들어있다. 단순한 지식 획들을 위한 학습은 잊어버리면 끝이지만 이건 그렇지 않다.

  이제 그림책을 아이들이 즐겁게 즐길 수 있도록 그냥 내버려두자. 아이들이 어른들의 개입없이 스스로 깨우쳐 나가는 것들이 오히려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아이들을 성장하게 하니까.(글·오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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