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명작은 고전이니까 읽혀야 해!

 

  1.
  책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생각 가운데 하나는 바로 세계명작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 명작!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
  얼마나 유명하면 세계명작으로 꼽힐까?
  이런 유치한 생각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어쩐지 세계 명작을 안 읽으면 다른 사람들한테 뒤쳐진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물론 이 가운데는 나도 속한다. 지금은 덜 하지만, 학창 시절 나를 늘 주눅들게 하던 것 가운데 하나는 그 유명한 세계명작 가운데 아직 못 읽은 책들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무슨 책에 뭐가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이야기할 때, 혹시 그 책이 읽은 책이었을 땐 상관이 없었지만 내가 안 읽은 책이거나 읽다 내던져 버린 책이었을 때면 괜히 나 자신이 초라해 보이던 때가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책을 많이 읽는 편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중학교, 고등학교에 갈수록 이런 일이 더 자주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곰곰 생각해보니, 내가 초등학교 시절부터 주로 읽었던 책들이 이른바 세계명작이었는데도 말이다.
  초등학교 시절 전집류로 나온 책들은 다 세계명작이었다. 단행본으로 나온 책들도 있었지만 그 책들 역시 우리 나라 창작은 찾아보기 어려웠고 대부분이 세계명작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왔다. 어디를 살펴봐도 주위에 있던 책들은 세계명작뿐이었고, 누구나 다 세계명작을 읽고 있으니 '세계명작'은 바로 필독서라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어린 시절, 세계명작의 홍수 속에서 자란 지금의 어른들은 으례 '어린이 책=세계명작'으로 생각하곤 한다. 요즘은 우리 나라 창작동화도 많고 다른 책들도 많지만 그래도 세계명작은 반드시 읽어야 된다고 생각하곤 한다.
<소공자>, <소공녀>, <톰소여의 모험>, <빨간 머리 앤>, <안데르센 동화>, <이솝 우화>, <피노키오> 등등...

  2.
  세계명작은 꼭 읽어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대개 이렇다.
  첫째, 많은 어른들은 자신이 어린 시절 읽었던 세계명작을 기억하고, 아이들도 당연히 세계명작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다.
  둘째, '세계 명작'이라는 타이틀만으로도 기가 죽어(?) 똑똑한 사람이 되려면 당연히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다.
  셋째,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작품이기 때문에 그 나름의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판단하고 아이들에게 읽히는 경우다.

  하지만 이에 반대하는 주장을 펴는 사람들도 많다.
  세계명작이라 불리는 책들 가운데는 인종차별이나, 제국주의적인 사상이 드러난 책들이 많이 있고, 그래서 지금의 가치관과는 맞지 않아서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양쪽 모두 나름대로 타당성을 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제 냉정하게 다시 생각해 보자. 세계명작이기 때문에 무조건 읽히거나 혹은 무조건 반대하는 건 아닌지 말이다. 서로 상대방의 생각에 귀를 기울일 필요도 있다.

  3.
  나는 세계명작을 아이들에게 읽으라고 권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기 위해서, 먼저 어른들이 다시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지금 다시 봐도 좋은 작품이라 생각된다면 아이들에게 충분히 권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때도 주의할 점이 있다.

  첫째, 세계명작들만을 읽어보고 결정하지 말고 좋은 우리 창작도 함께 읽어보고 견주어 봤으면 하는 점이다. 어린 시절 우리 창작을 접할 기회가 없이 세계명작류에만 익숙해진 어른들로서는 선입견을 갖기 쉽기 때문이다.
  둘째, 세계명작은 여러 출판사에서 같은 이름으로 출판되는 경우가 많으니 함께 견주어 볼 필요가 있다. 세계명작은 번역물이기 때문에 같은 작품이라도 번역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셋째, 출판된 책이 완역판인지 다이제스트판인지를 살펴보는 것도 필요하다. 어린 시절 우리가 읽었던 세계명작의 대부분은 다이제스트판이었다. 물론 이런 현실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요즘엔 완역판들이 간간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랄까? 그래서 앞에서 지적한 대로 여러 출판사의 작품을 견주어 읽다보면 번역상의 문제뿐 아니라 전체 내용 자체가 조금씩 다른 경우까지 발견할 수 있게 된다. 다이제스트판은 작품을 줄거리 위주로 축약시키기 때문이다. 결국 문학이 갖고 있는 온전함 힘은 잃어버린 채 우리 아이들은 작품의 줄거리가 곧 문학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갖게 될 수도 있다.
  
넷째, 아이들에게 책을 권할 때는 그 책이 아이들의 단계에 맞는 책인지를 엄밀히 검토해야 한다.
  세계명작은 좋은 책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린 시절부터 아이들이 좋은 책들을 많이 읽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 책을 권했다가는 오히려 역효과만 부를 수도 있다.가만히 살펴보면 세계명작이라는 이름을 달고 출판된 책 가운데는 성인용 책이라 할 수 있는 작품들도 간간이 껴있는 걸 볼 수 있다. 영화로 치자면 미성년자 관람불가 작품이랄까? 하지만 이런 작품들은 친절한 출판사 덕분에 문제 장면(!)은 삭제된 채 세계명작으로 아이들에게 권해지기도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세계명작 가운데 많은 책들은 아이들의 정서와는 관계없이 어른들의 욕심 때문에 - 아이들이 세계명작은 좀더 어린 시절에 읽으면 똑똑해진다고 믿는(?) - 마구 아이들에게 권해지고 있다. 하지만 아이들과 맞지 않는 책은 그 책이 아무리 좋은 책이라고 해도 아이들에게 절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섯째, 유명한 외국 작품이 모두 다 세계명작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외국 문학 가운데 널리 알려진 작품은 무조건 다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외국의 유명한 문학 작품=세계명작"이라는 공식이 이루어지진 않는다. 물론 훌륭한 작품은 그만큼 유명해질 수 있겠지만, 유명한 작품이 곧 좋은 작품이라는 공식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베스트셀러가 반드시 좋은 책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세계명작들이 제국주의적 시각으로 쓰여 있다는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분들은, 그 제국주의적 시각이 작품 전체의 기본 생각인지 아니면 그 시대의 반영으로 표현된 것이고 주제는 따로 있는 것인지 냉정하게 다시 한번 읽어보시라고 권해보고 싶다. 그래서 만일 제국주의적 시각이 그 시대의 반영이고 주제는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아이들에게 권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말이다.

4.
  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요즘 들어서 세계명작들이 완역판으로 새롭게 출판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다이제스트판이 아니라 작품을 온전하게 감상하고 평가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좋은 일이다. 하지만 '완역판'이라는 출판되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작품이 진짜 좋은 세계명작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다. 혹시 작품의 유명세를 믿고 그간 다이제스트판의 문제를 해결한 좋은 작품인양 폼을 재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사실 어린 시절 읽었던 많은 세계명작 가운데는 지금 다시 완역판으로 읽었을 때 별다른 감동도 없고, 좋은 작품으로 여겨지지 않는 것들도 있다. 그러나 어린 시절 세계명작류 말고는 읽을 책이 별로 없던 시절에는 그런 작품들도 큰 영향력을 미쳤다. 안타까운 일이다. 좀더 좋은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어떤 책들은 진짜 안 좋은 영향을 미쳐 세계명작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사람들이 걱정하는 데로 서양에 대한 열등감을 심어주기도 했다.

  이제는 세계명작에 대해서 좀더 객관적인 눈으로 바라봐야 할 시기이다. 그 동안 세계명작이 아이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 건 사실이지만, 그런 과거사 때문에 모든 세계명작을 밀쳐버릴 수도 없는 일이다. 또 아이들의 책읽기를 아이들의 머리를 키워주는 일 정도로만 생각하며 무조건 세계명작에 연연해하는 어른들의 태도도 이젠 바뀌어야 한다.
  그럴 때만이 아이들은 다양한 종류의 책들과 자유롭게 만나고, 그 가운데서 자연스럽게 느끼고 배워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글 : 오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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