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질문


《피터 히스토리아 1, 2-
불멸의 소년과 떠나는 역사 시간여행

(교육공동체 나다 글/송동근 그림/북인더갭/2011년)
              

 

1.

역사는 암기 과목이 아니다!
맞다. 학창 시절 선생님도 그렇게 말씀하셨고, 역사를 공부한다는 사람들은 모두 다 그렇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역사는 대표적인 암기 과목이다. 시험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역사의 흐름을 파악하고, 시험에 나올 만한 것들을 달달달 외워야 한다.
그러다 보니 역사를 어려워하는 아이들이 많다. 달달 외워 시험 점수는 괜찮게 나왔지만 실제로는 무슨 뜻인지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세계사로 넘어가면 사정은 더 복잡해진다. 달달달 외우는 것도 한계가 있는 법! 제대로 이해를 못하고 외우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그래서인지 우리 역사는 재미있지만 세계사는 싫다는 아이들도 많다.
그럼 어린이 역사책의 사정은 어떨까? 역시 가장 대표적인 건 연대기 순으로 정리를 해 놓은 통사 종류다. 이렇듯 통사가 어린이 역사책의 대표가 된 건 통사가 갖는 중요성도 있지만 교과서의 편제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어린이 역사책의 기본 임무가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 수업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는 뜻이다. 다른 점이라면 교과서의 내용을 풍부한 자료와 설명으로 이해하기 쉽게 풀어놓았다는 점 정도가 아닐까.
덕분에 어린이 역사책은 적어도 무슨 뜻이지도 모르고 달달달 외우는 오류는 범하지 않게 도와준다. 이 정도도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도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교과서보다 쉽고 재미있게 역사를 배울 수 있는 책, 그건 어쩌면 일종의 부교재 이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2.

『피터 히스토리아 1, 2』는 역사만화책이다. 고대 수메르 지역에 살던 주인공 피터가 시공간을 뛰어넘어 여행을 하는 판타지 만화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이 책 역시 넘쳐나는 역사 만화의 한 권 정도로 보일지도 모른다. 주인공이 시공간을 뛰어넘어 역사 속에 들어가 그 현장을 배우는 건 요즘 역사책에서 흔하게 쓰이는 방법이다. 직접 보고 경험하면 좀 더 쉽게 배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도 관심이나 이해가 없는데, 주인공을 무작정 과거로 보낸다고 해서 역사적 사건에 대한 관심이 크게 달라질 리는 없다.
하지만 이 책은 좀 달랐다. 아니, 아주 많이 달랐다. 주인공이 시공간 여행을 하며 역사 체험을 한다는 점만 같았지 모든 게 달랐다.
가장 중요한 건 주인공이 시공간 여행을 통해 역사체험을 왜 하는가 하는 점이다.
보통 역사책에서 시공간 여행을 통한 역사체험은 ‘체험학습’이다. 학습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다. 그러다 보니 주인공 아이들은 과거의 역사 속에서 체험을 하긴 하지만 바로 그 체험이라는 한계 때문에 한 발짝 뒤로 물러서 있다. 즉 역사 현장에서 뭔가를 알아내고 있긴 하지만, 그곳은 어디까지나 잠시 머물렀다 떠나는 곳일 뿐 자신의 삶과 이어지질 못한다.
반면 이 책은 달랐다. 주인공이 역사 시간여행을 하는 건 학습이 목적이 아니다. 피터가 역사 여행을 하는 건 자신이 품게 된 풀리지 않는 의문 때문이다. 그래서 피터는 길을 떠난다. 세상이 답을 줄 때까지 언제까지라도 세상을 돌아다니기로 한다.
그러니 피터의 역사 시간여행은 단순한 체험이 아니다. 역사를 온몸으로 살아내며 자신이 갖고 있던 의문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3.
피터는 왜 역사 시간여행을 떠났는지는 무척 중요한 부분이다.
피터가 살던 곳은 지금으로부터 4,700년 전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작은 마을이다. 그곳에 우르크의 길가메시가 쳐들어온다. 많은 사람들이 죽고 남은 사람들은 우르크의 노예로 끌려간다. 우르크, 고대 문명의 발상지인 그곳은 지금으로 치면 이른바 선진국이었다. 신의 지혜를 빌려 강의 분노를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는 곳이었다. 피터가 늘 선망하며 가보길 원하던 곳이다. 우르크 사람들은 피터가 궁금해 하는 것들에 대한 답을 알고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꿈은 깨진다. 피터는 한순간에 가족을 잃고 노예로 끌려간다. 피터로선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펼쳐진다. 피터는 자신이 살던 마을에 쳐들어와 수많은 사람을 죽인 살인자들이 신과 함께 한다는 사실도, 자신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이 노예가 되어 우르크 사람들이 시키는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도, 사람이 사람을 노예로 삼아 무자비하게 부려먹는다는 사실도 이해할 수 없다.
결국 피터는 목숨을 건 탈출을 시도한다. 벼랑 끝에서 떨어져 정신을 잃은 피터는 한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살아난다. 살아난 피터는 새로운 의문을 갖는다. 우르크 사람들은 왜 자신의 마을을 침략했는지, 사람이 사람을 지배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 그래서 결심한다. 세상을 돌아다니며 질문을 던지기로. 세상이 답을 줄 때까지 언제까지라도, 왜 죽는지도 모르고 죽어간 마을 사람들 몫만큼 살아남아 그들 같은 사람에게 답을 전해주기로 결심한다.
이 첫 장면은 피터가 역사 시간 여행을 떠나는 계기를 보여준다. 그리고 여기서 피터의 고민은 이 책이 지향하고 있는 방향을 분명히 보여준다. 바로 누구의 시각으로 역사를 보는가 하는 점이다.

4.

역사에서 사관이란 무척 중요하다. 같은 사건이라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게 기록될 수 있기 때문이다.
피터가 겪은 사건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가 배운 역사에서 우르크는 고대문명의 발상지로, 길가메시는 영웅으로 기록된다. 하지만 피터의 입장에서라면 사정은 달라진다.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착취하고 쌓은 문명에 대해서, 그런 일을 해낸 사람들에 대해서 부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책은 피터가 겪은 일을 발단에 놓음으로써 이 책이 어떤 가치관을 갖고 쓰고 있는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이는 어린이책에서는 보기 힘든 모습이다. 보통 사관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면서도 ‘역사의 객관성’을 이야기하며 결국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애매한 입장을 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끝까지 일관된 입장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그리스 철학자들의 위대함을 이야기하는 대신 노예 아이소포스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위선을 폭로한다. 이른바 시민이라 불리는 특권층이 과연 어떤 기반에 서 있는가에 대해서, 노예와 여성의 자유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신대륙을 발견했다는 영웅 콜럼버스 역시 이런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다. 콜럼버스는 단지 유럽 사람들의 영웅일 뿐이었다. 콜럼버스가 발을 딛었던 아마존 숲속에서 살던 이와라크족의 눈으로 볼 때는 콜럼버스는 무자비한 학살자였을 뿐이다.
이렇듯 이 책은 세계사의 주요 장면을 보여준다. 이 가운데 피터가 있었다.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피터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그리스의 노예로,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던 시대의 예루살렘에서, 콜럼버스와 함께 배를 타고 아마존의 숲속에 도착한 선원의 한 명으로, 지구가 돈다는 말을 하는 것만으로 목숨을 내놓아야했던 시절에 떠돌던 고아 아이로, 프랑스 혁명의 현장에서, 산업혁명 당시 착취 당하며 일하던 방적공장에서, 2차 세계대전의 와중에 독일군에 대항해 싸우던 산사람들 곁에서, 인종차별과 남녀차별의 문제가 전면에 떠오르던 1968년의 미국에서, 그리고 현재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피터의 고향 이라크로 여행을 계속한다.
4,700년에 걸친 시간 여행이다. 세상은 변했지만 피터는 처음 여행을 떠날 때의 모습 그대로다. 바뀐 건 피터가 가는 곳에 따라 그곳의 발음에 따라 이름이 페테루, 피터, 피에르, 페트로스, 표트르, 피오트르 등으로 바뀐 것뿐이었다. 아니, 하나 더 있다. 그의 이름에 ‘히스토리아’라는 성이 붙은 것이다.
피터의 이름에 ‘히스토리아’라는 성이 붙은 건 1968년 미국에서다. 여자에 대한 차별에 대해 분노하는 메어리라는 아이와 인사를 나누며 자신을 ‘피터 히스토리아’라고 소개한다. 메어리는 피터의 성을 듣자마자 따지듯 말한다. 히스토리아라는 성이 히스토리에서 따온 거 아니냐고. 히스토리란 단어는 남자(He)들만의 이야기(story)라는 거 아니냐고. 역사에 왜 여자들 이야기는 없냐고 묻는다.
히스토리아(historia)는 영어 히스토리(history)의 어원인 그리스 말이다. ‘묻고 배우기’라는 뜻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메어리의 불만은 틀렸다고 말할 수 있다. 히스토리아라는 성에는 피터가 처음 시간 여행을 떠났을 때의 의미-세상이 답을 해 줄 때까지 질문을 던지기로 한 것-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메어리의 불만에도 타당성이 있다. 피터의 질문이 ‘사람이 사람을 지배하는 것’에 대해서 시작된 것이라면, 메어리의 질문은 ‘남자가 여자를 지배하는 것’에 대한 것에 대한 문제 제기다. 역사가 시작된 이후 남자들이 스스로를 역사의 주인공으로 여기며 기록을 했다는 점에서 피터가 던졌던 질문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피터는 이라크로 되돌아간다. 그곳이 고향이어서거나 혹은 여행의 출발지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4,700년의 시간 여행에서 너무 지쳤고, 더 이상 역사의 여행자로 남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피터의 시간 여행은 끝나는 걸까? 피터는 과연 질문에 대한 답을 찾게 되는 걸까?

5.

피터가 이라크에 도착한 건 이라크가 미국과 연합국들을 상대로 힘든 전쟁을 벌이고 있을 때였다. 그리고 폭격에 쓰러진 피터는 동굴 속의 할아버지 한 분과 마주한다. 우르크에서 탈출을 하다 정신을 잃은 피터를 돌봐주었던 바로 그 할아버지다.
할아버지의 정체는 무엇일까? 여행의 시작과 끝에 등장하는 할아버지는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그 할아버지가 피터에게 말한다. 수천 년을 살아봐도 그저 무기력한 방관자에 불과하지 않았냐고. 그러니 이제 그만 두고 자신의 시간을 찾으라고.
할아버지가 이런 말을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궁금증이 극대화될 무렵 할아버지의 정체가 밝혀진다.
할아버지는 또 다른 피터 히스토리아다. 이렇듯 어린 피터가 할아버지가 된 피터와 마주하는 장면은 이 책의 압권이다. 할아버지는 시간 여행을 통해 답을 찾지 못하고 지쳐 세상을 등진 피터의 모습이다.
오랜 시간 여행에 지쳐 이라크로 돌아왔던 피터는 깨닫는다. 이것이 또 한 번의 선택이라는 것을. 여행을 멈추고 자신을 역사에서 자유롭게 놓아두고 자신만의 공간이 동굴에 남을 것인지, 아니면 다시 역사의 현장인 세상 속으로 갈 것인지를 선택할 순간인 것이다.
그리고 피터는 세상으로 돌아간다. 역사의 시간이 더 필요하냐는 할아버지의 질문에 ‘필요한 게 아니라 자신이 바로 역사’라는 말과 함께.
결국 피터의 질문과 답은 끝나지 않고 계속되는 셈이다. 아마 피터가 처음 가졌던 의문-사람이 사람을 지배하는 세상-이 사라지는 세상이 나타나기 전까진 피터의 시간 여행은 계속될 것이다.

6.

보면 볼수록 이 책이 갖는 의미는 참으로 대단해 보인다.
이 책이 갖는 가장 큰 의미는 이 책으로부터 비로소 역사에 대해 ‘왜?’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역사의 방관자가 아니라 역사의 주인으로 세상 속에서 적극적으로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을 찾아나가야 함을 알려준다.
또 하나의 큰 의미는 문학으로서의 역사를 보여줬다는 점이다. 이 책은 4,700년 동안의 피터의 시간 여행을 10개의 이야기로 보여준다. 각각의 이야기들은 모두 하나의 이야기로서 완결성을 지닌 문학 작품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그리고 10개의 이야기가 모여 하나의 큰 주제를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대단한 힘이 어디서 나왔을까? 혹시 공동창작(교육공동체 나다)이기에 가능했던 작품은 아니었을까? 서로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하면서 이야기가 더욱 풍성하고 치밀해질 수 있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그동안 어린이 역사책이 제자리 뛰기를 하듯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면, 이 책은 어린이 역사책을 한 발자국 내딛게 한 작품이다. 이 책을 계기로 앞으로 더 좋은 책들이 많이 나오길 바란다.


- 이 글은 어린이와문학에서 펴내는 《월간 어린이와 문학》 2012년 7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