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와디캅! 할아버지 / 꽌우, 안뇽하시오


《무에타이 할아버지와 태권 손자》
(김리라 글/김유대 그림/웅진주니어/2011년)

 


1. 다문화를 다룬 책이라고?

태국에서 태어난 아빠와 한국에서 태어난 엄마가 한국의 같은 공장에서 일하다 만나 결혼을 했다. 그리고 한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는 자신이 한국에서 태어난 한국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어떤 친구는 이 아이를 볼 때마다 ‘태국 간장’이라고 놀려댄다.
혹시 이쯤에서 ‘다문화 가정 이야기네!’ 하고 단정 짓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은 반은 맞지만 반은 아니다. 주인공인 관우네가 다문화 가정인 건 분명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 책의 소재일 뿐이다. 이 책의 진짜 이야기는 낯선 친할아버지와 손자의 만남이다.
내가 굳이 이렇게까지 다문화 가정 이야기가 아니라는 쪽으로 못을 박는 데에는 까닭이 있다.
우선은 다문화 가정이라는 말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다. 원래 다문화 가정이란 서로 다른 국적, 인종, 문화를 지닌 사람들이 이룬 가정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우리나라에서 다문화 가정이란 평범한 가정과 차별되는 개념이다. 다양한 소수 문화까지 포용해 서로 교류하고 이해하며 끌어안으려 한 다문화의 개념은 사라진 채 서로 다른 인종(민족)이 만나 이룬 가정이라는 사실만 강조한다. 이렇듯 ‘다문화 가정’이라는 말에 우리와 구별되는 특별한 가정이라는 틀이 전제하다 보니 그 틀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기획물로 나오고 있는 다문화에 관한 책들은 그 내용이 뻔하다. 주인공  아이들은 다문화 가정이라는 이유만으로 괴롭힘을 당하거나 괴로워한다. 그리고 어떤 계기를 통해 이런 문제가 해소되곤 한다.
다문화든 다문화를 다룬 이야기책이든 답답하긴 늘 마찬가지다. 그러던 차에 이 책을 만났다. 태국인 아빠와 한국인 엄마를 둔 관우의 이야기. 하지만 이 책은 우리와 구별되는 특별한 다문화 가정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랑 똑같은 평범한 아이의 이야기로 다가온다.

2. 관우, 너무나 평범한 우리 주변의 아이

사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단일민족이라는 허상에 얽매어 살아왔고, 살고 있다. 역사적으로도 우리나라 사람은 북방계와 남방계로 나눈다. 또 오랜 역사 속에서 수많은 전쟁이 있었고, 허 왕후가 인도에서 가야로 온 것처럼 수없이 많은 다른 민족과의 교류가 있었다. 그 가운데 지금 한반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단일민족이라 주장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따라서 태국인 아빠와 한국인 엄마로 이루어진 가정은 다문화 가정이 아니라 평범한 우리 주변의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 가끔씩 우리 주변에서 아랍인을 닮은 사람들, 인도인을 닮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처럼 그냥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다문화 가정이라는 특별한 시각은 버려야 한다.
그래서 이 책은 반가웠다. 다문화 가정의 아이를 다룬 이야기책이지만 우리와 다른 다문화 가정의 아이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와 전혀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아이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태어나서 처음 만나는 할아버지. 주인공 관우는 할아버지를 만날 생각에 실실 웃음이 난다. 할아버지에 대한 기대감도 있지만 처음 만나는 손자를 위해 선물을 준비하지 않았을 리 없다는 기대감은 더 크다. 그야말로 아이다운 모습이다.
하지만 기대감은 곧 섭섭함과 실망으로 다가온다. 첫째는 할아버지가 선물을 사가지고 오지 않으신 듯싶기 때문이고, 둘째는 할아버지는 얼굴도 새까맣고 이도 다 빠지고 말도 안 통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태국 할아버지 때문에 가장 친한 친구인 수호하고도 다투고 말았다. 수호가 관우를 괴롭히던 국동섭과 부하들에게, 태국에서 온 관우 할아버지가 무에타이 선수였다고 말한 것이 화근이었다. 수호야 관우를 구해주고 싶어서, 그리고 외국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개 태권도를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듯이 태국 사람이라면 당연히 무에타이를 할 줄 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한 말이었다. 하지만 국동섭에게 할아버지의 무에타이를 보여주는 일은 쉽지 않다. 우선 할아버지와는 말이 통하지도 않는다. 그러다 보니 괜한 말을 해서 문제를 크게 만든 수호랑 다투고 만 것이다.

3.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

관우는 우리말 밖에 할 줄 모르고, 할아버지는 태국말 밖에 할 줄 모른다. 태어나서 처음 만난 낯선 할아버지이기도 했지만, 관우와 할아버지에게는 다가가려야 다가갈 수 없는 언어의 벽이 있다.
관우가 아무리 할아버지한테 ‘무에타이 플리즈!’를 외쳐봐도, 할아버지는 ‘태꿍!’ 하고 답할 뿐이다. 관우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답답하고 애가 탈 노릇이지만, 사실 할아버지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일 것이다. 처음 만난 손자에게 잘 해 주고 싶긴 한데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단순히 언어가 다르기 때문만은 아니다. 서로 같은 언어를 쓰면서도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서 답답해하는 사람들은 너무나 많다. 언어 이전에 서로 다른 문화나 가치관의 벽을 느끼고 ‘너랑 나랑은 달라. 그래서 서로 통할 수가 없어!’ 하고 규정을 내리거나 혹은 ‘너랑 나랑은 달라. 도저히 통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하고 포기하는 순간 누구든지 서로 말이 통하지 않게 된다. 게다가 관우와 할아버지처럼 만날 기회조차 없었기 때문에 서로에 대해 낯설게 느끼기까지 한다면 더욱더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서로 소통을 해야 할 절박한 이유가 있을 땐 뭐든지 가능해진다. 언어가 다른 외국에서 바디 랭귀지로 의사소통을 했다는 사람들의 말이 나오는 까닭이다. 다행히 관우에게도 할아버지와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 절박한 이유가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관우를 괴롭히는 국동섭 덕분이었다.
관우는 국동섭에게 할아버지의 무에타이를 보여줘야 했고, 그래서 할아버지에게 적극적으로 말을 걸어야 했다. 안타깝게도 결과는 실패였다. 할아버지는 관우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서 처음엔 수호가 원망스러웠고 국동섭이 무서워 피해 다녀야만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실패라고만 할 수는 없는 뭔가가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수호와는 다시 친해졌고, 국동섭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은 사라지고 대신 할아버지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다.

4. 겉만 보고 판단할 순 없다!

관우가 할아버지에 대해 궁금해진 데에는 할아버지가 준 고추 젤리도 한몫 했다. 할아버지가 직접 만들었다는 고추 젤리는 노란 색과 빨간 색의 고추 젤리였다. 할아버지는 관우에게 빨간 고추 젤리를 줬다. 하지만 관우는 빨간 고추 젤리는 매운 태국 고추가 듬뿍 들어있을 것 같아서 노란 고추 젤리를 입에 넣었다. 노란 고추 젤리는 레몬 폭탄이었다. 관우가 젤리를 뱉고 물로 입안을 헹구고 나자 할아버지는 다시 빨간 고추 젤리를 내밀었다. 빨간 고추 젤리는 관우 생각과는 달리 꿀처럼 달콤한 맛이었다.
할아버지가 준 고추 젤리는 겉의 색깔만 보고 맛을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사람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관우가 말이 통하지 않는 할아버지와 소통하려고 했던 계기가 국동섭에게 무에타이를 보여주기 위해서였다면, 고추 젤리는 관우가 할아버지를 겉모습만으로 판단했던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했던 계기였다. 물론 그렇다고 할아버지가 당장에 좋아지는 건 아니었다. 여전히 관우는 할아버지가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할아버지가 관우에게 뭔가 사주고 싶어 관우를 데리고 상가를 기웃거리는 것도 창피하기만 하다.
하지만 이런 모습 또한 관우의 겉모습일 뿐이다. 관우의 마음엔 어느 새 할아버지에 대해 마음이 열리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태국으로 떠난다는 말을 들고 관우의 기분이 이상해지는 건 바로 이런 변화를 확인시켜 준다. 관우는 무에타이 때문에 할아버지랑 이야기를 해 보려고 노력했고, 할아버지가 만들었다는 고추 젤리를 먹었고, 할아버지가 진짜 무에타이 선수이긴 했지만 경기 중 사고로 상대 선수가 죽는 바람에 그만 두게 되었다는 사정도 들었다. 하지만 할아버지에 대한 원망스러움이 사라지진 않았다. 그렇게 원망스럽기만 했던 할아버지라면 떠나도 그만이련만 관우는 할아버지를 못 가게 하려고 작전까지 짠다.
관우의 작전은 성공했지만 아쉽게도 할아버지는 하루만 더 머물고 떠나셨다. 할아버지가 떠나시던 날 엘리베이터 안에서 할아버지가 “태꿍! 야이야” 내지른 기합을 듣고 진짜 무에타이인 줄 알았던 국동섭은 더 이상 관우를 괴롭히지 않는다.

5. 태꿍! 무에타이 할아버지

관우는 할아버지가 떠난 지 한 달이 넘어서, 할아버지가 태국에 못 가게 하려고 할아버지 바지를 숨겼던 일을 고백한다. 아빠는 할아버지 바지를 감춘 대가로 할아버지 바지를 사러 가자고 한다. 그리고 관우는 할아버지에게 사과 편지 한 통을 쓴다. 관우가 한글로 쓰면 아빠가 그 아래 태국 글자로 써 줬다. 편지를 쓰면서 관우는 빨리 태국 글자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한다. 할아버지에게 하고픈 말을 아빠를 통해 하는 게 창피하고 어색했다.
이제 관우는 할아버지와 소통할 수 있는 길을 적극 모색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태국 글자(말)을 배우는 것으로 시작할 것이다.
태국 할아버지가 처음 오셨을 때, 비록 어색한 발음이지만
“꽌우, 안뇽하시오. 방가습니다.”
하고 외쳤던 거나, 또 관우가 태권도 도복을 입을 모습을 보고
“태꿍! 야이야!”
하고 외쳤던 것은 처음 보는 손자 관우랑 말하고 싶은 할아버지의 마음을 보여준다는 걸 관우도 알았을 것이다.
책을 덮으며, 지금껏 읽었던 다문화 가정을 다루고 있는 책들이 떠올랐다. 특별한 상황만을 강조하고, 이를 극복해야만 했던 주인공 아이들이 떠올랐다. 그 아이들은 다문화의 틀 속에서 늘 괴로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은 다문화 가정의 아이라는 틀을 깨고, 그 아이들 역시 평범한 아이의 모습으로 일으켜 세웠다. 태국 할아버지와의 소통의 문제지만, 그건 조금만 깊이 생각하면 관우뿐 아니라 어느 집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문제다.

그래서 반가웠다. 이제야 다문화 가정을 다루고 있는 이야기책이 진정한 의미에서 문학으로 거듭나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정말 반갑고 반가운 책이다.


- 이 글은 한국어린이문학협의회에서 분기별로 펴내는 《어린이문학》 2011년 겨울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