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밖에서 놀게 해!
            그럼 전쟁도 줄어들 걸?


《보손 게임단》
(김남중 글/사계절/2011년)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잘 모른다. 결혼을 하기 전이었으니 적어도 13년 이상은 지났을 것이다.
비디오를 빌려봤다. 제목이 뭐였는지도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지금까지도 문득문득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그 영화에서 아이들은 게임을 하게 해 준다는 사람들의 꾐에 빠져 어디론가 가서 게임을 열심히 했다. 갤러그 같은 게임이었다. 아이들은 게임에 몰두해 총을 쏘아 적들을 격추시켰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아이들이 하던 게임은 실제 상황이었다.
그 내용이 워낙 강렬했던지라 늘 뇌리에 남아 있었다. 한참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보고 싶어 주위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해 봤지만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혼자서 빌려다 봤던 건지, 아님 진짜 보기는 했던 건지조차 헷갈릴 때도 있다.
그러다 이 책을 봤다. 줄거리는 다르지만 아이들에게 게임이라 속인 채 실제 전쟁을 수행하게 하는 모습은 똑같았다. 아마 그때 그 영화감독의 문제의식과 이 책의 작가 김남중의 문제의식이 같기 때문이리라.

무엇이 아이들을 게임으로 내몰았을까?

총을 쏘고, 전투기를 몰고 적들을 물리치는 게임은 아주 흔하다. 과연 게임은 그렇게 잔인해야 하는 건지, 아님 사람이란 원래 잔인해서 이렇게 잔인한 게임을 만들고 하는 건지 무서운 생각이 든다. 혹시나 전쟁과 같은 현실에서 늘 당하고만 살던 답답한 마음을 게임을 통해 대리만족을 얻는 건 아닐까 싶어지기도 한다. 찬세와 태웅이 그랬던 것처럼.
찬세와 태웅이는 학원을 빼먹은 채 피시방에서 게임에 몰두하다 ‘보이지 않는 손’ 게임단 시험을 치루고 프로 게이머 후보로 들어간다.
두 아이는 원래 피시방 죽돌이는 아니었다. 피시방이 아닌 공원에서 야구팀을 이끌었던 두 팀의 대표였다. 하지만 더 이상 야구를 할 수 없었다. 야구공이 넘어간 집에선 아이들을 경찰서에 신고했고, 찬세는 어마어마한 액수의 손해배상청구서를 받았다. 야구팀은 순식간에 해체됐다.
더 이상 야구를 할 수 없게 된 아이들은 피시방에서 총을 쏘고 부수며 스트레스를 날렸다. 뭐든지 쓰러뜨릴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찬세는 태웅이의 도움을 받아가며 날로 게임 실력이 발전했다. 야구는 할 수 없고, 엄마가 하루 종일 마트에서 일하면서 번 돈으로 등록해준 학원은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었다. 엄마에게 미안한 건 알지만 학원비는 어쩔 수 없이 게임비로 야금야금 사라지고 있었다.
그러다 누군가 엄청난 제안을 했다. 프로게이머가 될 생각이 없냐고. 프로게이머가 되면 대학도 갈 수 있고 돈도 많이 번다고 했다. 이렇게 찬세와 태웅이는 프로게이머 훈련생이 됐다.
아이들은 밖에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버스를 타고 가서 훈련을 했다. 아이들은 그곳에서 ‘보이지 않는 손’ 즉 보손 게임을 연습했다. 석 달 동안 보손 게임을 마음껏 가지고 놀다가 정식 프로게이머가 되면 1점당 1원씩 월급이 나온다고 했다. 보손 게임은 실제와 똑같이 비행기를 조종할 수 있게 만들어졌고, 실제 지형을 그대로 따왔고, 실제 비행기의 사운드를 샘플링한 음악 등 진짜와 똑같이 실감이 났다.
게임 방법은 몇 가지만 빼면 보통의 게임과 비슷했다. 다른 게임은 무기가 거의 무한정 제공되지만 보손 게임은 실제 비행기의 무장 탑재량과 연료량을 정확하게 반영했다. 그리고 절대 추락당해서는 안 되었다.
아이들은 보손 게임에 아주 쉽게 적응했다. 태웅이는 단연 일등이었다. 그러나 찬세는 꼴지를 면치 못했다. 찬세는 아이들이나 여자들이 있는 집을 적군 기지라며 공격하라는 지시가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너무나 실감나는 화면 때문에 보통 게임처럼 아무 생각 없이 공격할 수가 없었다.
훈련생이 아닌 진짜 프로게이머를 뽑는 날도 그랬다. 찬세 입장에서는 반드시 합격을 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지만 도저히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공격 대상인 사람들 모습이 진짜 살아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매니저는 잘못 쏴도 감점이 없으니 무조건 쏘라고 독촉했지만, 총도 없는 사람을 쏠 수는 없었다.
졸지에 불합격 통지를 받은 찬세는 화가 났다. 쫓겨날 때 쫓겨나더라도 꼴찌 꼬리표는 떼고 싶었다. 주먹으로 싸우면 또 다른 청구서가 날아올 테니, 조종 실력으로 한판 붙고 싶었다. 찬세가 모는 헬리콥터와 다른 헬리콥터가 한판 붙었다. 곧이어 다른 훈련생들까지 합세를 해 한바탕 전투가 벌어졌다.
아이들은 이 모든 게 그저 게임일 뿐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은 진짜 전쟁이었다. 찬세가 진짜 살아있는 사람처럼 느낀 건 그 사람들이 진짜 살아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진짜로 전쟁을 치룬 것이다.
찬세가 늘 원했던 것처럼 맘껏 공원에서 야구를 할 수 있었다면 이처럼 게임에 빠질 일은 없었을 것이다. 아이들이란 아무리 게임이 좋다 하들 밖에서 맘껏 뛰놀 수만 있으면 밖에서 놀고 싶어 한다. 결국 아이들을 게임 중독으로 내모는 건, 밖에서 맘껏 뛰놀지 못하게 하는 현실이다.

강대한 씨가 보손 게임을 만든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강대한 씨는 원래 어린이를 위한 두뇌 개발 컴퓨터 게임에 재산과 인생을 모두 걸었던 사람이다. 강대한 씨가 만든 게임은 학부모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아이들은 강대한 씨의 게임을 좋아하지 않았다. 너무 착한 게 탈이었다. 결국 강대한 씨는 파산을 하고, 가족들과도 헤어져 노숙자 신세가 됐다. 착하다는 것이 더 이상 미덕이 아닌 현실에서는 착한 게임도 역시 미덕이 아니었다.
다시는 게임을 못 만들 것 같던 강대한 씨를 다시 일으켜 세운 건 강대한 씨가 먹다 남은 컵라면을 먹으러 덤비는 비둘기와 개미떼였다. 강대한 씨는 달려드는 비둘기에게 돌을 던지고, 까맣게 몰려든 개미들을 나무젓가락으로 찍었다. 마치 자신이 비둘기와 개미들에게 하느님인 것 같았다. 재밌었다.
강대한 씨는 다시 일어섰다. 게임이 평화롭고 예의 바르고 지능 발달에 도움이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한 자신을 버리고 새롭게 일어섰다. 보손 게임은 강대한 씨의 야심작이었다.
강대한 씨는 자신과 손을 잡는 사람이 미래의 일등이 된다며 재계 순위 2위의 나우 그룹에게 보손 게임을 제안하지만 거절당한다. 그러나 결코 아무도 넘볼 수 없는 재계 순위 1위의 함라 그룹은 직접 찾아와 손을 잡는다. 세상을 움직이고 싶었던 강대한 씨와 나라를 움직이고 싶은 함라 회장이 손을 잡은 것이다.
강대한 씨는 전국의 게임 고수들에게 보손 게임을 조종할 15세 이하의 아이들을 찾아오게 한다. 강대한 씨가 15세 이하를 찾는 이유는 아이들은 어른들처럼 따지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또 특정 조건 아래 전자 기기를 통한 원격조종 감각이 정점에 이르는 연령대가 13세에서 16세 사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
처음엔 모든 게 순조롭게 계획대로 진행되었다. 아이들은 엄청난 속도로 게임 기술을 습득했고, 파병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던 정부에게 파병을 하지 않고도 그 이상의 효과를 거두는 방법을 설득했다. 전쟁을 사업으로 여기는 정부는 그 계획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마지막 순간에 찬세가 난동을 피우지만 않았다면 모든 게 순조로웠을지 모른다. 하지만 결국 모든 사건을 책임져야 할 존재로 함라 그룹에 의해 외국으로 보내지고 만다.

전쟁 같은 현실에서 실패하는 자와 성공하는 자는 누구일까?

곧 프로 게이머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던 찬세와 태웅이는 결국 프로 게이머가 되지 못했다. 보손 게임으로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강대한 씨 역시 꿈을 실현하지 못했다. 보손 게임단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들은 또 다시 실패한 것이다.
하지만 사건의 소용돌이에서 빗겨서있던 실세 함라 그룹 회장은 성공했다. 처음부터 뒤에서 지원만 하고 강대한 씨를 전면에 내세웠기 때문에 남들에게 꺼림칙한 것도 없었다. 강대한 씨의 모든 기술 정보는 이미 다 확보한 상태다. 함라의 기술은 강대한 씨가 없어도 스스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 강대한 씨를 해외로 빼돌리는 것은 함라와 강대한 씨의 관계를 숨기고, 이미 들어간 투자비용을 회수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현실은 냉정했다. 전쟁에서 승리는 온갖 첨단 무기로 무장을 한 강대국에게 돌아가듯, 전쟁 같은 현실에서도 승리는 자본가의 것이었다. 찬세나 태웅이, 강대한 씨 같은 찌질한 사람들이 갖는 희망은 얼마 지나지 않아 헛된 꿈이 되고 만다.
그렇다고 그저 절망적이기만 한 건 아니다. 찬세는 다시 야구를 하면서 헛된 꿈에서 깨어난다. 여전히 답답하기는 해도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으니 다른 방법을 찾으려 한다. 야구를 못하게 손해배상서를 청구했던 공원 끝 이층집 주인인 강대한도 사라졌으니 겁낼 것도 없다.

게임에 빠지게 만드는 현실+냉혹한 현실+전쟁의 음모

이 책은 아주 냉정하게 현실을 보여준다.
‘사는 게 전쟁’이라는 말이 실감이 날 정도로 우리의 냉혹한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보손 게임단은 분명 허구지만 동시에 허구라고 말할 수만은 없다. 이미 전쟁은 국가의 산업이 되어 있고, 아이들은 게임 속에서 가상의 전쟁을 하고 있다.
지독히도 어렵고 복잡한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은 재밌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이야기를 풀어가며 읽는 재미가 있다. 또 등장인물에 대해 충분히 공감대를 만들어 준다. 밖에서 신나게 야구를 하던 찬세와 태웅이 게임에 빠지게 되는 상황, 착한 게임만 만들다 망가질 대로 망가졌던 강대한 씨가 보손 게임을 만들게 되는 상황 역시도 인간적인 공감을 하게 한다.
무엇보다 이 책에서 가장 속 시원한 장면은 찬세의 반란이었다. 찬세의 반란에 함라 그룹과 손잡고 세상을 움직여 보려던 강대한 씨의 계획은 순식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강대한 씨가 착각한 게 있었다. 맘껏 뛰놀면서 자라난 아이들은 날마다 똑같이 반복되는 게임은 결국 싫증을 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어른들처럼 따지진 않을지 몰라도 때로는 의문을 갖기도 하고, 때론 불만에 대해 몸이 먼저 움직이는 존재라는 점이다.
김남중은 말한다. 아이들에게 밖에서 마음껏 뛰어놀 자유를 주는 것만으로도 전쟁이 줄어들 수 있다고.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 싶지만 이 책을 보고 난다면 충분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당장 실천해 보고 싶어진다.
아이들을 밖에서 놀 게 하자. 그럼 전쟁도 줄어들 테니 말이다.


- 이 글은 한국어린이문학협의회에서 분기별로 펴내는 《어린이문학》 2011년 가을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