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인 8색 이야기 모음집


《빨주노초파남보똥》
(김기정, 김남중, 김양미, 박효미,  이용포, 이현, 최나미, 최진영 글/사계절/2008년)

 


단편은 장편을 읽는 재미와는 또 다른 묘미가 있다. 말하고자 하는 주제와 상황을 얼마나 잘 농축해 냈으며, 필요한 순간을 잘 잡아냈는가에 따라 단편의 묘미는 달라진다. 장편과는 성격이 달라서인지 장편을 잘 쓰는 사람이 반드시 단편을 잘 쓰는 것도 아니고, 단편을 잘 쓰는 사람이 반드시 장편을 잘 쓰는 것도 아니다. 시를 잘 쓰는 사람이 이야기 글을 잘 쓰는 것이 아니 듯 말이다.
잘 쓰인 한 편의 단편은 강렬한 인상을 남기곤 한다. 하지만 단편을 잘 쓰는 사람이라도  쓸 때마다 잘 쓰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단편집이 있지만 한 권의 책에 있는 단편 모두가 좋은 경우는 없다. 그래서 한 권에서 두 세편 정도의 좋은 단편을 찾아낸다면 그 책을 좋은 책이라 여기게 된다.
이 책은 단편 모음집이다. 하지만 다른 단편 모음집과는 다르다. 한 사람의 작가가 자신의 단편을 모아놓은 것이 아니라 여덟 명의 작가가 각각 한 편의 작품씩을 내고, 이를 모아서 하나의 작품집을 만들었다. 함께 한 작가의 이름을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롭다. 김기정, 김남중, 김양미, 박효미, 이용포, 이현, 최나미, 최진영. 다들 최근 가장 각광받는 신진 작가들이 아닌가!
왠지 기대를 하게 되는 건 단지 작가들의 이름값만은 아니다. 한 사람의 단편집이 아닌, 이처럼 여러 작가의 단편을 묶어서 낸 책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달려라, 바퀴!》(바람의아이들/2006)이다. 2005년 가을 원고 모집을 통해 응모된 원고들 가운데 열네 편의 작품을 골라 엮은 이 책은 아주 의미가 있었다. 한 권의 책으로 묶어낼 만한 힘이 없어 그냥 묻혀버릴 수 있었던 작품도, 작가들의 개성도 살려냈다. 게다가 주목받는 신인들을 대거 발굴하는 성과도 거두었다.
물론 《빨주노초파남보똥》은 《달려라, 바퀴!》와는 다르다. ‘신인’이 아닌 ‘신진’ 작가들이라는 점, 또 출판사에서 공모한 것이 아니라 작가들의 모임에서 스스로 의기투합했다는 점, 여덟 색깔 무지개라는 콘셉트도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라는 점이 그렇다. 한창 활발한 활동을 하는 작가들이 자발적으로 자신들만의 색깔을 갖고 만들어낸 책이라는 점부터 흥미를 끈다.
책을 읽으면서 우선 눈이 가는 건 각자가 맡은 색깔을 작품 속에서 각자 어떻게 녹여냈을까 하는 점이었다. 작품의 순서는 무지개똥 색깔과 같은 빨주노초파남보똥색 순서였다. 각 작품의 삽화의 색깔이 빨주노초파남보똥색 순서이고, 첫 번째 작품인 이현의 <침입자>에 빨강색 퐁이라는 것이 나오고, 마지막에 똥을 사랑하는 김기정의 작품이 실린 걸로 봐서 확실하다. 이젠 작가마다 자기가 맡은 색깔을 어떻게 녹여냈는지를 볼 차례다.
작가의 개성이 다른 만큼 색깔을 드러내는 방법도 다른 것 같다. 자신이 맡은 색깔과 관련된 소재나 이미지를 직접 드러낸 작품도 있고,  색깔의 느낌을 상징적으로 녹여낸 작품도 있었다. 빨강을 맡은 이현의 <침입자>나 이용포의 <노란 잠수함>, 김양미의 <내 친구의 눈>, 최나미의 <X-파일>, 김기정의 <고마의 똥>은 색깔과 관련된 소재와 이미지를 드러낸 경우다. 반면 김남중의 <거짓말쟁이>, 박효미의 <어느 화요일>, 최진영의 <OTL 금지>는 직접적인 색깔이 나오는 대신 색의 상징을 살렸다.
이현의 <침입자>는 SF물로 화성을 지구인이 살 수 있는 행성으로 바꾸기 위해 처음으로 파견된 한 가족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 화성은 다 알다시피 빨강색 행성이다. 화성에 파견된 가족은 퐁이라는 빨강색 먼지덩어리의 공격으로 비상탈출을 하고 계획엔 차질이 생긴다. 빨강은 공격성을 나타내는 색이기도 하다. 빨강색 화성, 빨강 먼지 덩어리, 그리고 불같은 공격성까지 빨강의 이미지가 선명하다.
김남중의 <거짓말쟁이>는 늘 술에 취해 살고 거짓말을 하는 아빠를 보며 원망하는 아이의  이야기다. 집을 나갔던 아빠는 결국 돌아온다. 싸늘한 시체가 되어서. 그런 아빠를 보며 슬프지 않다 하면서도, 아빠가 예전의 모습 그대로 돌아오면 지금까지 거짓말한 걸 모두 용서해줄 수 있다는 아이의 고백은 처절하게 다가온다. 해지는 저녁노을이 떠오른다. 사그라지던 아빠의 모습에서, 이 아이의 모습에서.
이용포의 <노란 잠수함>은  외국인 노동자를 아빠로 둔 아이의 이야기다. 비틀즈의 ‘노란 잠수함’은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다. 기타치고 노래를 불러 불우이웃돕기를 한다던 아빠는 이주노동자로 몰리게 되고 보물1호인 기타마저 부러지고 만다. 순간 비참해지지만, 아이와 아빠의 모습을 보며 희망을 갖게 된다.
김양미의 <내 친구의 눈>은 초록과 빨강을 구별하지 못하는 석찬이와 석찬이를 놀리는 아이들에게 맞서 싸우는 친구 건오의 이야기다. 석찬이는 자신을 도와주려 나서는 친구 건우가 때론 더 싫다. 자신은 다른 아이들과 좀 다르게 색깔이 보일 뿐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보는 색깔이 아닌 자신만의 색깔로 세상을 보려는 건우의 모습이 너무 단호해서 현실감이 없는 듯도 보인다. 하지만 건우의 모습을 통해 ‘서로 다름’을 이해하는 방법을 알게 된다. 또한 진정한 친구의 관계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박효미의 <어느 화요일>과 최진영의 <OTL 금지>는 파랑과 남색 이야기다. 두 가지 모두 파랑과 남색이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김남중의 <거짓말쟁이>처럼 선명한 주황빛의 저녁노을이 떠오르지도 않는다. 파랑과 남색은 비슷하다. 한쪽이 좀 환하고 다른 한쪽이 조금 어둡다는 차이 정도다. 공통적인 느낌이라면 차가움, 냉소, 고독 같은 거다. 그래서일까? 두 작품 모두에서 이런 느낌이 난다.
<어느 화요일>은 어느 날 돼지로 변해버린 아이가 엄마를 따라다니며 엄마의 일상을 알게 되는 이야기다. 엄마는 자식이 다른 아이보다 뒤떨어질까 불안해 교육열에 불타는 다른 엄마들을 뒤쫓아 다니고 밤이면 몰래 돈을 벌러 다닌다. 엄마 처지도 돼지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엄마가 더 이상 돼지와 같은 처지로 살지 않고, 아이도 원래의 아이로 돌아올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인 듯싶다. 더 이상 공부에 휘둘리지 않기. 이런 세상이 오기는 할까?
<OTL 금지>에서 아이는 엄마 아빠의 별거로 힘들어하면서도 한편으론 ‘아이 때문에 참고 살아요’ 하는 엄마 아빠보다 당당한 엄마 아빠가 좋다며 쿨하게 받아들인다. 그 모습이 지나치게 쿨하다 싶다. 하지만 그냥 좌절하기 보다는 엄마 아빠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대신 친구를 통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는 모습은 긍정적으로 보인다. 이혼 가정 아이에게 새로운 대안의 하나로 읽혀질 수도 있을 듯싶다.
최나미의 <X-파일>은 자동차를 부순 범인을 찾는 탐정 소설 분위기의 이야기지만 실상 그 속에 감추어진 건 가부장적인 아빠와 내성적인 오빠 사이의 갈등이다. 같은 자식이지만 서로 성별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기 마련이다. 오빠 일기장에 있는 표현을 빌리자면 ‘같은 보라 가운데 빨강이 더 많으면 퍼플, 파랑이 더 많으면 바이올렛’인데 오빠는 씩씩해 보이는 바이올렛이 아니라 퍼플 쪽에 가깝기 때문에 아빠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 안타깝지만 오빠의 이런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아빠랑 오빠의 갈등은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다. 아니, 해결이 불가능해 보이기까지 하다. 불안하다. 하긴 불안도 보라의 느낌 가운데 하나다.
김기정의 <고마의 똥>은 학교에서 용변 때문에 실수를 하는 불안감, 특히 학교에서 똥을 누게 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아주아주 특별한 고마의 똥을 통해 해소시켜준다.
책을 덮으며 느낀 건 정말 무지개똥의 색깔만큼이나 분명한 색깔을 갖고 있는 작품들이 모였다는 점이다. 꼭 색깔의 의미나 이미지를 찾지 않더라도 다루고 있는 소재나 주제, 글의 형식이 모두 개성이 넘친다.
이런 다양함을 즐길 수 있다는 것 자체로 즐거운 책이다. 한 사람의 단편 모음과는 확연히 다르다. 작품마다 인상이 강렬하기 때문에 보통 단편집보다 훨씬 많은 수의 작품을 꼽으며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개인의 단편집도 좋지만, 앞으로 가끔 이렇게 함께 어우러져 단편집을 내주면 좋겠다. 이렇게 콘셉트를 잡아서 내는 것도 좋겠지만, 아무런 콘셉트 없이 그냥 내는 것도 보고 싶다. 콘셉트가 있어서 각 작품이 더 선명한 자기 색깔을 드러낼 수도 있었겠지만, 때로는 그 속에 갇히는 한계가 드러날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정말 흥미로운 책을 만나 즐거웠다. 여덟 명 작가들의 작품들, 앞으로 나올 때마다 빼먹지 말고 꼭 챙겨봐야겠다.


- 이 글은 한국어린이문학협의회에서 분기별로 펴내는 《어린이문학》 2008년 겨울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