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하거나 상투적이거나
《가오리가 된 민희》(이민혜 글/유승재 그림/문학동네/2009년)

 


어? 시작이 심상치 않다. 뭔가 아주 단호하면서도 상대방을 자기 이야기로 끌어들이는 문체도 그렇지만, 이야기 시작부터 주인공에 대한 정보를 그대로 보여주면서 독자가 주인공에게 몰입하게 하는 구성 또한 압권이다. 첫 문장을 읽으면 그대로 끝까지 읽어보고 싶어진다.
‘내 이름은 김, 민, 희. 그것에 의문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금까지는 말이다. 물론 가끔은, 정말 아주 가끔은 의심해 볼 기회가 있었으면 싶기도 하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자기 존재에 대한 의심. 소공자나 소공녀까지는 아니라도 현실이 만족스럽지 않은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의심할 수 있는 자기의 뿌리에 대한 의심이다. 민희를 힘들게 하는 건 ‘생선가게 미혼모의 딸’이라는 사실이다.

오후 수업 시간에 졸음이 쏟아지며 온 몸이 흐물흐물해진 민희는 가오리가 되고 만다. 그리고 민희는 날갯짓으로 교실을 빠져나와 하늘을 날아 엄마가 있는 생선가게로 간다. 밑도 끝도 없이 가오리로 변해 버리다니! 또 가오리가 하늘을 날다니! 조금은 황당한 듯 싶지만 여기에 시비를 걸고 싶은 생각 따위는 전혀 들지 않는다. 마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 벤자민이 왜 그렇게 태어났는지를 밝히지 않아도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받아들이듯이 민희가 수업시간에 졸다가 그만 가오리가 되어 버렸다는 것 역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이 정도면 90%는 성공한 셈이다. 남은 것은 가오리가 되어버린 민희가 엄마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엄마랑 어떻게 화해를 하고 의심을 해소하느냐에 달렸다.
그러니 생선가게 엄마를 찾아가는 길은 엄마와 관련된 여러 추억을 떠올리는 길이기도 하다. 그래서 하나의 사건은 늘 엄마와 연결되어 있다. 엄마가 어쩌다 미혼모가 되었는지도, 열악한 상황에서도 늘 반들반들한 뾰족구두를 신고 일하면서 자존심을 지키고 싶어 하는 엄마의 모습도, 또 엄마가 왜 민희가 기절을 할 정도로 공부를 시켰는지도……. 독자는 가오리가 된 민희와 함께 여행을 하며 엄마와 민희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게 된다.
이쯤 되면 민희가 생선 가게에 있는 많고 많은 생선 가운데 왜 하필 가오리로 변했는지도 짐작이 간다. 어떤 생선으로 변해도 여러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면서 달라질 수는 있었겠지만 가오리처럼 하늘을 날지는 못했을 것이다. 마치 가오리연처럼 날갯짓을 하며 나는 시늉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늘을 난다는 것, 그것은 지금까지 보던 높이가 아니라 좀더 높은 곳에서 다르게 세상을 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니 비록 몸은 가오리가 됐을지라도 예전의 민희가 아닐 거라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아쉬움이 남는다. 신선하면서도 도발적이기까지 했던 이야기가 별다른 갈등도 없이 마치 도사처럼 엄마의 모든 걸 이해하며 마무리된다. 신선한 출발과는 달리 지나치게 상투적인 결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왕이면 좀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갈등을 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진다. 무언가로 변신을 한다는 건 지금까지와는 다른 위치와 처지에서 상대를 보게 된다는 점에서 이해의 폭이 커지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변하기 이전의 본 모습과의 갈등 속에서 이해하는 것이 맞다. 그렇다면 이렇게 맥 빠진 결론에 이르게 된 건 민희의 고민이 민희 말마따나 ‘그럭저럭한 만족’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굳이 이렇게 가오리로 변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재미있는 놀이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교육놀이였음을 깨닫는 듯 한 느낌이다. 일종의 배신감. 그러나 재미있는 놀이로 느끼게 하는 것도 사실은 대단한 것이라는 걸 인정하면서 말이다.


- 이 글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격주로 펴내는 《기획회의》 통권 248호(2009년 5월 20일) '분야별 전문가 리뷰'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