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속들이 살림살이가 가득 담긴 정겨운 도감

살림살이-겨레전통도감》(토박이 기획/윤혜신 글/김근희, 이담 그림/보리/2008년)

 


반가웠다. 반가운 마음에 다른 책보다 먼저 손이 갔다. 그동안 ‘이런 책이 나왔으면……’하고 바랐기 때문이다.
살림살이.
살림살이는 우리가 먹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물건들이다. 즉, 우리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물건이자,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가장 친근한 물건이기도 하다. 근대화가 되며 냉장고, 가스오븐렌지, 전기밥솥 따위의 가전제품들이 등장하면서 우리의 살림살이 모습을 바꾸긴 했지만 재질과 모습만 조금 바꾼 채 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도 있다. 주걱, 도마, 칼, 가위, 수저, 소쿠리, 양푼, 주전자처럼 말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지금껏 우리가 써왔던 옛 살림살이들은 다소 푸대접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가마솥처럼 몇몇 살림살이는 그 효용성을 인정받아 다시 그 명맥을 유지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살림살이는 옛일을 추억하는 수준에서 머무를 뿐이다. 박물관 같은 곳에서 가끔은 이 살림살이를 만날 때도 있지만 살림살이 자체로서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책도 마찬가지다. 『민속도감』(현암사/2006)이나 『우리 민속 도감』(예림당/1999)도 충분히 의미 있는 책이긴 하지만 살림살이에만 초점이 맞추지진 않았다. 살림살이야말로 옛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역사임에도 오히려 ‘소소한 일상’이라는 점 때문에 주목을 받지 못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런 살림살이들은 지금의 3,40대 이상에겐 어렸을 때의 아스라한 추억으로 살아있기도 하지만 실제로 사용하는 모습을 전혀 보지 못한 요즘의 아이들에게는 별세계의 물건처럼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즉 우리가 사는 데 꼭 필요한 살림살이지만 아이들에게는 ‘살이’라는 말을 붙이기가 민망한 현실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 책은 우리의 옛 살림살이를 보여주는 살림살이 도감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별로 24절기에 얽힌 살림 이야기를 해 주면서 살림살이 하나하나의 설명과 함께 그 모습을 보여준다.
살림살이를 24절기로 나눈 건 절기가 농사를 짓는 기준이었고, 그래서 우리의 옛 살림 또한 이 절기를 따랐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수가 다가오면 집집마다 장을 담갔고, 경칩이면 돌담을 다시 쌓거나 금이 간 벽에 흙을 바르고 집을 손보았고, 청명이 되면 농사를 시작하는 식으로 말이다. 지금도 뉴스나 일기예보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각 절기지만 실생활에서는 거의 신경을 못 쓰고 지나가는 것이 절기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절기가 단순히 겨울잠 자던 개구리가 깨고(경칩), 낮과 밤의 길이가 같고(춘분) 하는 것을 넘어서 살림살이와 어떻게 연관이 있는지를 살필 수 있게 해 준다.
이 책은 이렇게 계절마다 절기가 먼저 나오고 그 뒤를 이어 그 계절에 해당하는 살림살이가 하나씩 등장한다. 왼쪽에는 각각의 살림살이에 대한 설명이, 오른쪽에는 그 모습이 그려있다.

옛날에 장맛을 보면 그 집 주인 음식 솜씨를 알 수 있다고 하지. 장을 담아 두는 장독을 얼마나 잘 갈무리하는지 보고 안주인 살림 솜씨를 가늠하기도 했대.
장독에는 별별 음식을 다 담아 두었어. 쌀부터 시작해서 간장, 된장, 고추장은 물론이고 물, 술, 꿀, 김치, 마른 생선, 미역, 과일, 곡식까지 뭐든 담아 두는 보관 창고지.

책에서 첫 번째로 나오는 장독에 대한 설명글이다. 설명 방법이 보통 도감류에서 보는 글과는 다르다. 마치 옆에서 설명을 해 주는 것처럼 느껴지는 입말체, 살림살이에 대한 설명뿐 아니라 그 살림살이를 어떻게 사용하며 살았는지를 설명하는 글이 딱딱한 도감을 부드럽고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또한 글쓴이의 말마따나 단순히 살림살이에 대한 지식을 알게 해주는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살림을 한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도 느낄 수 있다.
책 뒤편에는 각종 살림살이를 재료별(나무로 만든 것, 풀이나 대로 만든 것, 쇠붙이로 만든 것, 흙으로 빚은 것, 돌로 만든 것, 열매로 만든 것, 천으로 만든 것, 여러 가지 재료로 만든 것)로 따로 한꺼번에 모아놓았다. 같은 재질별로 살림살이를 살펴보니 느낌이 또 다르다.
그런데 기대가 너무 컸기 때문일까? 아쉬운 점도 눈이 띤다. 우선은 이들 살림살이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었으면 좋았겠다 싶어진다. 물론 이들 살림살이는 같은 물건이라도 여러 가지 크기로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래도 일반적인 크기는 있다. 예를 들어 광주리는 소쿠리랑 견줄 때 더 크다. 하지만 그림만으로는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구별하는데 무리가 있다. 대강의 크기라도 알려주거나 다른 물건과의 대비를 통해서라도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생각하니 다시 궁금해지는 것이 있다. 모습이나 기능이 비슷한 살림살이를 한데 모아 보여주면 좀더 구별하기가 쉽지 않았을까 싶은 것이다. 예를 들어 소쿠리와 바구니는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그림도 몇 번을 견줘보아야 차이점이 눈에 들어온다. 글에서 그 차이를 알 수 있을까 싶어 두 가지를 함께 견줘보니 더욱 헷갈린다. 만드는 재료가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 말고 용도는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더구나 바구니의 설명에는 ‘대나 싸리 같은 것을 가늘게 쪼개어 결어서 속이 깊게 만든 그릇’이라고 하니, 대나무 껍질로 속을 둥글고 깊게 만든 소쿠리도 바구니의 일종이라고 봐도 될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림으로 견줘보니 소쿠리는 윗부분을 둥글게 말아서 만들었고, 바구니는 두껍게 쪼갠 대나무를 말아서 고정하고 밑은 소쿠리와 달리 판판한 듯 보이는 게 다른 정도다. 그런데 소쿠리는 봄(20-21쪽)에, 바구니는 가을(146-147쪽)에 등장을 해서 견줘보기도 쉽지가 않다. 비슷한 살림살이가 계절별로 달리 들어갈 이유가 없었을 텐데, 또 바구니하면 ‘대바구니 옆에 끼고 나물 캐는 아가씨야’라는 노래가 생각나는 마당에 굳이 이렇게 나눌만한 이유가 있었을까 싶어지기도 한다.
또 다른 아쉬움이라면 살림살이의 모습만 달랑 보여주기 보다는 살림살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함께 담았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점이다. 물론 펼친 그림이 보완해 주는 부분이 크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함이 있다. 예를 들어 기름틀이나 저울 같은 경우 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함께 보여줬으면’ 싶은 마음이 든다. 그래야 이런 살림살이를 처음 보는 아이들이라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반갑고 의미 있는 책에 아쉬운 이야기를 주절주절 너무 보태고 말았다. 그만큼 기대와 욕심이 났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 이 글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격주로 펴내는 《기획회의》 통권 244호(2009년 3월 20일) '분야별 전문가 리뷰'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