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톤, 텔레비전으로 들어가다
《텔레비전 속 내 친구》(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 글/유타 바우어 그림/비룡소/2007년)

 


어느 날, 안톤이 사라졌다. 안톤은 할머니를 만나러 할머니 집에 갔었다. 그리고 안톤과 함께 안톤의 할머니도 사라졌다. 안톤이 왜 할머니한테 갔는지, 두 사람이 함께 사라질 이유가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과연 두 사람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이 책은 그 비밀을 알려주는 열쇠다. 두 사람이 사라지고 난 뒤 할머니 집에서는 안톤의 일기가 발견된다. 안톤의 일기에는 두 사람이 왜? 어떻게? 사라졌는지가 그대로 담겨 있다. 이 책은 비밀이 담긴 안톤의 일기를 발췌해 보여주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일기라는 특성상 그날그날 안톤의 상황이나 감정이 잘 드러나 있다. 두 사람이 왜 이 세상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었는지도 충분히 공감이 된다.
1월 7일, 일기는 시작한다. 이 날은 안톤이 텔레비전 속에 사는 칼 아저씨를 운명처럼 만나는 날이다. 리모컨 덮개가 본체에서 떨어져나가 산산조각이 나는 바람에 발견하게 된 덮개 속의 파란 단추. 안톤이 그 단추를 누르자 낯선 화면이 나타나고 텔레비전 속의 남자가 말을 건다.

 

“내 이름은 칼이야. 텔레비전이 혼자 멍하니 앉아 들여다보고만 있어야 하는 게 아니라면 더 재미있을 것 같지 않니? 네가 드디어 파란 단추를 찾아내서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구나. 하지만 날 보기 싶으면 파란 단추를  한 번 더 누르면 돼.”

 

그 뒤로 안톤은 파란 단추를 눌러 칼 아저씨와 자주 만나 이야기를 한다. 칼 아저씨는 안톤의 둘도 없는 친구가 된 것이다. 안톤은 텔레비전 속 칼 아저씨를 만나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 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안톤의 엄마와 아빠는 늘 싸우느라 안톤에게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친구도 없다. 학교 친구도 없지만 동네에서 유일한 또래였던 시씨마저도 엄마가 시씨네 엄마랑 심하게 다투고 난 뒤 놀지 못하게 한다.

칼 아저씨는 안톤이 자신을 너무 자주 불러내는 게 걱정이다. 아저씨 입장에서는 나쁠 게 없지만 안톤이 자신에게 심하게 의존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안톤은 칼 아저씨를 만나면서 많은 게 달라진다.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엄마 아빠와는 달리 칼 아저씨는 안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또 어려움이 생길 때면 나서서 해결해주기도 한다. 칼 아저씨 덕에 성적도 쑥쑥 올라간다. 해마다 유급을 당할까 봐 벌벌 떨었는데, 우등상을 기대해 봐도 좋을 만한 수준이 된다.

안톤은 텔레비전 속의 칼 아저씨를 통해 위안과 희망을 얻는다. 정말 이런 텔레비전이 있다면 이렇게 안톤처럼 빠져들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만큼 말이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다. 보통 아이가 텔레비전에 빠져드는 건 늘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텔레비전이 무작정 부정적으로 보이지만은 않는다. 물론 칼 아저씨의 말을 통해 텔레비전에 지나치게 빠져드는 것이 걱정스러울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지만 말이다.

문제는 파란 단추다. 파란 단추는 리모컨 덮개에 가려 있어서 덮개를 억지로 벗겨내 찾아보지 않고서는 발견할 수 없다. 그나마 모든 리모컨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 파란 단추가 있는 리모컨만 있으면 어떤 텔레비전이고 관계없이 칼 아저씨를 만날 수 있다. 결국 파란 단추는 현실과 텔레비전 속 칼 아저씨의 세계를 연결해주는 열쇠와 같은 것이다. 그리고 칼 아저씨와 만난다는 것은 텔레비전을 그저 혼자서 멍하니 앉아서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 파란 단추를 얼마나 자주 누르고 어떻게 쓰느냐는 전적으로 이 파란 단추가 있는 리모컨을 갖고 있는 사람의 선택에 달려 있다.

안톤이 텔레비전을 보는 게 보통의 텔레비전을 보는 것과 다른 의미를 갖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안톤이 텔레비전 속 칼 아저씨와 이야기를 하면서 조금씩 달라지는 것 말이다. 하지만 칼 아저씨가 자신을 너무 자주 불러내는 것에 대해 걱정했던 것처럼, 텔레비전에 많은 걸 의지했던 안톤에게 문제가 생기고 만다.

아빠와 싸우느라 안톤의 생일도 잊어버렸던 엄마는 뒤늦게 생일 선물을 사준다. 안톤이 너무 갖고 싶어 했던 기타가 아니라 새 텔레비전을. 안톤이 돌아왔을 때는 이미 예전의 텔레비전은 쓰레기 매립지에 버려진 뒤였다.

어쩌면 엄마는 찌지직거리는 텔레비전에 늘 매달려 있는 안톤에게 새 텔레비전을 선물하는 건 아주 훌륭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안톤에게 새 텔레비전은 의미가 없다. 이미 엇나간 엄마와의 관계는 모든 걸 엇나가게 만든다. 엄마는 엄마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안톤 인생에서 가장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만 셈이다.

문제는 또 있었다. 안톤이 도서관에서 빌린 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칼 아저씨가 텔레비전에서 나온 사이 이 일이 벌어진 것이다. 돌아갈 텔레비전을 찾지 못한 아저씨의 몸은 점점 작아지고, 약해져간다.

칼 아저씨를 구할 방법은 하나뿐이다. 파란 단추가 있는 리모컨을 찾아내는 것이다. 안톤이 믿고 따랐던 할머니는 마침내 파란 단추가 있는 리모컨을 찾아낸다. 안톤은 인형만큼 작아진 칼 아저씨를 가방에 넣어 할머니 집에 간다. 칼 아저씨는 무사히 텔레비전 속에 들어간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았다. 할머니 집에는 산더미처럼 부서진 리모컨이 쌓여있다. 할머니는 이 주 동안 한시도 쉬지 않고 리모컨을 훔치러 다녔고, 사람들은 이런 할머니를 미쳤다고 생각한다. 경찰 수사도 시작됐다. 할머니는 도망가야 했다. 자식(안톤의 아버지)하고도 단절되어 근근이 살아가는 할머니가 현실 공간에서 도망갈 곳은 없었다. 안톤이 마음에 걸리는 것 말고는 아쉬울 것도 전혀 없다. 결국 선택한 곳은 텔레비전 속. 할머니는 텔레비전 망명 자격을 얻어 텔레비전 속으로 들어간다.

그럼 안톤은? 할머니마저 없는 현실은 안톤 역시 미련이 없다. 안톤은 칼 아저씨나 할머니 몰래, 할머니가 텔레비전에 들어가기 시작할 때 할머니 치맛자락을 붙잡고 들어갈 계획을 세운다.

이렇게 안톤과 할머니는 사라진다. 여기서 문득 드는 생각. 혹시 칼 아저씨도 이렇게 해서 텔레비전 속에 들어가게 된 건 아닐까? 안톤처럼, 할머니처럼 현실에서 방법을 찾지 못해 텔레비전을 피난처로 삼게 된 건 아닐까?

잘못된 선택일지는 몰라도, 이들에게는 최선의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기발한 이야기 전개와 달리 가슴이 먹먹해지는 책이다.


- 이 글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격주로 펴내는 《기획회의》 통권 228호(2008년 7월 20일) '분야별 전문가 리뷰'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