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마리 몬스터의 숲.exe
- 포켓몬스터 개발자 타지리 사토시 이야기

(주영상 글/이영환 그림/씨드북/2018.11)

 

이 책은 지금껏 내가 봐 왔던 그림책들과는 형식과 내용면에서 여러 모로 달랐다. 아니, 어쩌면 형식과 내용이 너무 잘 맞아떨어지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는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기도 했다. 지금껏 생각지도 못했던 참신함과 기발함 때문에 말이다.
이 책은 표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포켓몬스터의 개발자인 타지리 사토시의 이야기다.
흔히 나누는 장르 구분에 따르자면, ‘인물이야기’ 그림책이다. 하지만 책을 펼치는 순간, 이 책이 단순한 인물이야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표지를 살펴보면 그 이유를 금방 알 수 있다. 가운데 화면을 두고 좌우 양쪽으로 있는 방향키의 모습이 낯익다. 바로 게임기 닌텐도의 모습이다.
화면 아래쪽엔 ‘
책장을 넘겨서 게임을 시작하세요!’란 문구가 보인다. 이 책이 게임 형식임을 확인할 수 있다. 제목 또한 마찬가지다. 제목은 ‘151마리 몬스터의 숲.exe'. 다 알다시피 exe는 실행파일의 확장자다. 이 책이 게임과 같은 형식으로 진행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포켓몬스터 개발자인 타지리 사토시의 이야기라는 점을 생각할 때,
이보다 더 기발한 방식은 없을 듯 싶다.
그러다 보니 이 책은 일반적인 책들과는 달리 가로면으로 봐야 한다.
즉, 책장을 아래에서 위로 넘겨야 한다.
책장을 위로 넘겨 그림책이면서 동시에 게임기와 같은 이 책을 실행시키면 두 가지 화면을 볼 수 있다.
위쪽에선 사토시의 일상 이야기가 펼쳐지고, 아래쪽에는 표지와 마찬가지의 게임기 모습으로 위쪽 화면의 상황 때문에 사토시의 상태가 어떻게 달라지는가가 나타난다. 사토시의 고민과 함께 사토시의 자신감과 즐거움, 지식, 우정의 상태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도 그래프로 보여준다.
그런데 이 책은 분명 사토시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사토시만의 이야기로 읽히지는 않는다.
자신감도 없고, 즐거움이나 친구들 사이의 우정도 없던 사토시가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서 달리지는 모습에 자꾸 자신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일상생활의 경험은 다르지만 게임기를 통해 나타나는 그래프의 변화는 그 누구나 겪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
게임기 속 사토시의 그래프 아래쪽에 있는 취미와 별명, 그리고 직업이 표시되는 부분도 잘 지켜봐야 한다. 처음엔 취미로 곤충채집 밖에 표시되지 않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별명이 생기고, 취미와 별명이 변화되어 가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성인이 된 다음에는 직업도 등장하는데, 이 직업이 사토시의 취미와 별명에서 이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한때는 ‘장래가 불투명한 아이’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았던 사토시. 하지만 그건 편견에 불과했다는 것을 확인하며 왠지 가슴 한편에 따뜻한 위안을 받는 느낌이다.

책을 덮으면 드는 생각.
이 책은 인물이야기일까?
타지리 사토시란 인물의 인생이 담긴 이야기이니 그렇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인물이야기로 느껴지진 않는다. 사토시의 이야기를 빌려와 풀어가는 이야기이지만 실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상황에 따라 어떤 부분은 좋아지고 또 어떤 부분은 나빠지며 상태가 달라지는 건 누구나 같기 때문이다. 비록 사토시가 겪은 상황과는 다르지만 자신이 겪은 상황을 떠올리며 게임기 속 ‘자신감’ ‘즐거움’ ‘지식’ ‘우정’ 그래프를 그려볼 수도 있다. 확실히 일반적인 인물이야기와는 차별점이 분명한 책이다. 타지리 사토시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창작 그림책’이라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책의 뒤 면지 부분에는 타지리 사토시에 대한 정보가 실려 있다. 그 가운데 눈에 띄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151
번째 포켓몬은 실은 테스트용으로 만들었던 것이 실수로 게임 속에 남아 있었고, 이 때문에 포켓몬이 인기를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늘 부정적 이미지를 주는 실수가 때로는 행운을 가져다 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인상에 남는다.
두 번째는 어린 시절의 자유로운 놀이의 경험이 인생에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사토시의 말이다.

책을 덮고 뒤표지를 보니 게임기 모양 속 화면에 친구들, 그리고 포켓몬들과 게임을 즐기는 아이의 모습이 보인다. 옆에는 ‘자신감’ ‘지식’ ‘우정’ 그래프도 보인다. 그런데 아래쪽에 사토시의 상태 대신 빈 공간(_______)이 보인다. 자신의 이름을 적어 넣는 곳이다.
내가 책을 보는 내내 사토시와 동일시하며 나 자신을 모습을 떠올렸던 건 작가의 완벽한 의도였다.
이 책이 형식과 내용 면에서 정말 기발하면서도 잘 짜인 그림책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이 책의 글 작가인 주영상은 92년생의 젊은 작가다. 이 모든 것이 어릴 적부터 그림책을 보며 자유롭게 자랐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이 책은 작가의 첫 번째 책이자, 아직까지는 유일한 책이다. 앞으로 이 이름을 꼭 기억해 두고 싶다. (책의 서지 부분을 살펴보니 출판사의 마케팅 담당자와 작가의 이름이 같다. 아마도 같은 분?)

혹시 이 책이 포켓몬스터의 개발자인 타지리 사토시의 이야기이다 보니 일본 작가의 책이라 오해하는 일은 없기를!^^
지난해부터 지금껏 이어져오는 노노재팬의 상황에서도 닌텐도 게임기는 여전히 잘 나가고 있는 상황이라 이 책을 소개하는 것이 조심스러웠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사토시의 이야기가 아니고, 또한 우리 작가의 책이니 편견 없이 봐주셔도 좋을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