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할머니 꽃할머니


<나는 수요일의 소녀입니다>(안미란 글/이경하 그림/개암나무)
                   <모래시계가 된 위안부 할머니>(이규희 글/이네버엔딩스토리북)
              

 

 풀리지 않은 매듭

  매주 수요일 낮 12시, 일본대사관 앞에는 노란 옷을 입은 할머니들과 할머니들을 응원하러 온 사람들이 모인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인권과 명예회복을 위한 모임이다. 일명 수요집회. 사람들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게 공식적으로 사죄하고 배상할 것을 외친다.
  1992년 1월 8일부터 이어졌으니 벌써 25년째다. 2011년 12월 14일, 1000번째 맞는 수요집회 때에는 일본대사관 앞에 일명 ‘평화의 소녀상’으로 불리는 평화비도 세웠다. 이 수요집회는 과연 언제까지 계속될까? 문제 해결의 끝은 아직도 보이지 않는다. 일제로부터 독립한지도 어언 70년이 지났고, 꽃 같은 소녀들은 할머니들이 되었다. 하지만 가해자였던 일본은 물론 문제 해결의 주체인 정부조차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그 사이 할머니들은 세상을 떠나고 이제 남은 할머니는 40여명뿐이다. 할머니들이 살아계시는 동안 과연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나는 수요일의 소녀입니다 - 평화비가 들려주는 일제 강점기 이야기』

  거칠게 뜯긴 듯 잘린 머리카락, 맨발에 발꿈치를 들고 의자에 앉아 있는 소녀의 모습. 평화비는 전쟁터에 강제로 끌려간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의 상징이다. 따라서 평화비의 소녀는 특정한 한 사람이 모델이 아니라 당시 같은 문제로 고통을 당했던 모든 소녀들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평화비의 소녀가 화자가 되어 자신이 어떻게 위안부로 가게 됐고, 이후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이야기한다. 한 개인의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당시 위안부로 끌려갔던 소녀들의 삶이 대부분 다 비슷하기 때문이다. 평화비의 소녀가 개인이 아니라 같은 일을 겪은 모든 소녀들을 상징하듯이 평화비의 소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당시 위안부로 끌려갔던 모든 소녀들의 삶을 대변하고 있다.
  눈도 코도 오목조목, 작고 예쁘다고 오목이라 불리던 아이는 일본군에게 강제로 끌려갔다. 오목이를 비롯해 일본군에게 끌려가던 소녀들은 사람이 아니라 군수품의 하나일 뿐이었다. 그렇게 인도네시아까지 끌려가 비참한 위안소 생활을 시작했다. 위안소 생활도 힘들었지만 도망치다 죽는 소녀를 보는 것도, 병이 든 소녀들이 군인들과 함께 숲으로 갔다가 되돌아오지 못하는 것도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더 힘들었던 건 해방이 되어 우리나라로 돌아오고 난 뒤였다. 물어물어 집을 찾아왔지만 미처 들어가지도 못한다. 부모님이 부끄러워서 어떻게 지낼까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오목이는 자신이 그냥 그날 끌려가서 죽었다고 생각하시는 게 더 편할 거라 여기고 그냥 뒤돌아 떠나고 만다. 나이가 들어 할머니가 되도록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였다는 사실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할머니가 되었어도 아직까지도 일본 군인에게 당했던 상처는 여전히 치유되지 못했다.
  위안부 문제가 오랫동안 알려지지 못했던 건 이런 사정 때문이었다. 물론 가장 큰 문제는 모른 척 시치미 떼고 있는 일본과 우리 정부 탓이겠지만 피해자인 위안부들도 그 상처의 무게가 너무 크기에 이야기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이 아니었다면 다른 할머니들의 증언이 이어지지도 않았을 테고, 위안부 문제는 훨씬 더 늦게 알려졌을 것이다.   이 책은 위안부 할머니에 관한 책들 가운데 비교적 쉽고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다. ‘평화의 소녀상’이 1인칭 화법으로 조근조근 들려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아이들이 접근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성적인 부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어려움 때문이다.
  “돌격, 앞으로!”
  나는 그만 까무러치고 말았어.
  이 책도 다른 책들과 비슷하다. 성적인 부분은 추상적인 표현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위안부 할머니에 대한 사전 정보가 있지 않으면 할머니들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짐작하기 어렵다. 물론 이는 일인칭 시점의 글이 갖는 한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그렇다 쳐도 해방이 된 뒤 위안부 할머니들이 왜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는지, 왜 평생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상처를 혼자서만 껴안고 살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어른들이야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아이들로서는 힘들게 집까지 찾아왔다가 돌아가야 하는 게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모래시계가 된 위안부 할머니』    

  이 책은 위안부 할머니를 다루는 방식이 다른 책들과는 조금 다르다. 일단 위안부의 문제는 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5학년 여자아이인 은비의 현재 이야기다. 따라서 이야기를 위안부 할머니의 시선이 아니라 은비의 시선에서 바라볼 수 있다. 덕분에 이 책은 다른 책들과는 달리 분위기가 조금은 밝고 발랄하게 느껴진다.
 이야기는 은비 네가 임대 아파트에 이사를 오면서 시작된다. 은비네 옆집엔 꽃나무한테 사람처럼 말을 하는 이상한 할머니가 살고 있다. 어느 날 은비는 그 할머니의 모습을 텔레비전에서 보게 되고, 궁금증이 생기면서 할머니에 대해 하나씩 알아간다.
 여기에 은비가 다른 사람보다 좀 더 할머니를 이해할 수 있는 안 좋은 일이 생긴다. 밤에 문방구에 갔다 오다 성추행을 하려는 사람에게 잡혔다가 겨우 빠져나오게 된 것이다. 이날 이후 은비는 달라진다. 차마 엄마 아빠에게 말하지도 못한 채 무섭고 화가 나고 사람들이 미워지고 한다.  
  그러다 은비는 할머니가 미국에 다녀오는 동안 화분에 물을 주러 할머니 집에 드나들면서 할머니에 대해 자세히 알아가게 된다. 은비는 자신이 안 좋은 일은 겪고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것처럼 할머니도 그랬으리라 생각하고 할머니를 더 이해하게 된다. 할머니를 알아가는 과정이 누구의 도움을 받아서가 아니라 스스로 알아간다는 점은 이 책이 갖고 있는 가장 큰 미덕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할머니와는 그리 오래 함께 지내지는 못한다. 할머니가 아파서 자리에 눕는 일이 많아지더니 결국 정신도 오락가락하는 바람에 아파트를 떠났기 때문이다. 대신 은비는 할머니가 키우던 서른다섯 개의 화분을 맡아 키우기로 한다. 은비에게 화분은 할머니를 비롯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상징이 된 셈이다. 마치 ‘평화의 소녀상’처럼.

 마치며

  한 알 두 알, 모래시계에서 모래알이 떨어집니다. 한 분 두 분, 이 땅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이 떠나갑니다. 활짝 피어볼 틈도 없이 일본군의 군홧발에 짓밟혔던 꽃다운 처녀 시절이 떨어져 내립니다. 말할 수 없었던 고통이 소리 없이 흐느끼며 쌓여갑니다. 가족에게조차 찾아갈 수 없었던 외로운 삶이 모래바람으로 흩어집니다. 뼈아픈 기억을 묻어두고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은 그렇게 텅 빈 모래시계가 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모래시계가 된 위안부 할머니』의 뒤표지에 실린 글이다. 가슴이 싸해졌다. 위안부 할머니 문제와 관련해 우리의 현실을 너무 잘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살아계신 할머니는 이제 겨우 40여명, 곧 다 사라지실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물론 할머니들이 다 사라진다고 해도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수요집회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할머니들이 살아계시는 동안 문제가 해결되고,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 계속되고 있다는 수요집회도 끝이 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글은 계간 <어린이문학> 2016년 여름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