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아이에게 말을 걸다


<이웃집 통구>(강정연 글/국민지 그림/해와나무)
                   <우주 비행사 동주>(김소연 글/이경하 그림/별숲)
              

 

상구, 그리고 동주

2015년 10월 강정연과 김소연, 두 중견 작가의 책이 나란히 나왔다. 공교롭게도 두 작품 모두 소외된 아이의 이야기다.
두 아이가 처해있는 상황은 비슷하다. 엄마 아빠가 이혼한 뒤 어른들의 관심으로부터 소외된 아이. 하지만 두 작품이 풀어가는 방식은 같은 듯 다르다. 그래서일까? 두 작품의 결말 또한 사뭇 다르다.
확실한 건 작품에서 작가들의 마음이 오롯이 읽힌다는 점이다. 소외된 아이를 바라보는 안타까우면서도 따스한 눈길이다.

외로운 아이의 슬픈 판타지 - <이웃집 통구>

 “밥 먹었니?” 상대에게 관심을 건네는 따스한 말이다. 하지만 상구에게는 이런 말을 건네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상구는 학교에 가기 전 배가 고프고, 냉장고에는 먹다 남은 김밥과 치킨이 있어도 먹지 않는다. 따스한 말 한 마디 건네는 사람이 없다 보니 입맛도 통 없다.
상구가 창틀에 배를 걸치고 밖을 내다 봐도 위험하다고 야단쳐주는 사람도 없고, 아침에 자명종이 울려도 일어나지 못하는 상구의 엉덩이를 두드려 깨워주는 사람도 없다.
아버지와 단 둘이 사는 상구는 어른들의 보호로부터 방치되어 있다. 엄마는 집을 나갔고, 아빠는 늘 술에 취해 밤늦게 들어왔다 아침 일찍 나간다. 학교 선생님은 상구가 날마다 지각을 하는 것을 탓하지만 부모님을 만나겠다고만 할뿐 상구의 어려움을 공감해주지 않는다.
그런 상구 앞에 따스한 말을 건네는 친구가 나타난다.

사람 마을에서는 새로 이사 오면 시루떡을 나눈다지? 맛있게 먹어.
어린이가 특히 좋아하는 도넛을 만들었어. 우리 집에 놀러 와.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커다란 집에 사는 ‘새로운 이웃’은 상구네 집 앞에 맛있는 음식과 함께 쪽지를 두고 간다.
그 새로운 이웃은 ‘통구’다. 어느 날 갑자기 커다란 집이 생겨났다는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새로운 이웃 통구는 결코 평범하지 않다. 하얀 솜뭉치처럼 생겼는데, 크기가 사과만 했다 느티나무만 했다 자유자재로 바뀐다. 때로는 수많은 작은 알갱이로 알알이 흩어졌다 다시 한 덩어리로 모이기도 한다. 게다가 이목구비며 팔다리까지도 나타났다 사라지는 신기한 존재다.



통구는 외롭고 배고픈 상구에게 말을 건네고 음식을 나눈다. 그리고 선생님이 집으로 전화를 하는 바람에 곤란해진 상구를 위해 엄마처럼 전화 상담도 대신 해준다. 아침이면 상구의 엉덩이를 톡톡 두드려 깨워주고 상구가 아침을 먹고 학교에 늦지 않게 갈 수 있게 해준다. 덕분에 상구의 생활은 점점 밝아진다.
그렇다고 상구의 삶이 근본적으로 좋아질 수는 없었다. 아빠와 엄마는 서로 상구를 미루고 있었고, 만약 엄마가 데려가지 않으면 할머니 댁에 보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엄마든 아빠든 할머니든 상구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참으로 잔혹한 현실이다. 상구는 집을 나와 통구네로 간다. 아빠가 통구네 집 앞에 와서 불렀지만 대답도 하지 않는다. 가족의 화합을 원하는 동화를생각한다면 황당한 결말처럼 여겨질지도 모른다. 경우에 따라서는 한바탕 논란이 벌어질 수도 있는 결말이다.
하지만 어쩌면 이 책의 결말이야말로 가장 현실적인 결말일지도 모른다. 아무런 관심과 보살핌도 받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형식적인 가정의 틀이 아니니까 말이다.
상구의 외로움을 알아채고 친구가 되기로 마음먹었던 통구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상구와 음식을 나누는 일이었다. 그리고 음식을 먹으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너무 일상적이고 기본적인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 기본을 하찮게 여기기 때문에 수많은 상구를 만들고 있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더 이상 버림 받기 싫어 - <우주 비행사 동주>

동주라는 아이가 있다. 엄마는 애기 때 도망가 버리고, 아빠는 할머니에게 동주를 맡긴 채 사라져 버렸다. 함께 살고 있는 할머니는 폐지를 주워 겨우겨우 먹고 사는 형편이다. 가끔 속상할 때면 동주에게 폭력을 휘두르기도 한다. 밥을 제대로 먹지 못 하는 것은 물론 학교도 다니지 못한다. 때로는 동네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으며 맞기도 한다.
『이웃집 통구』에 나오는 상구와 어떤 면에서는 비슷하지만 객관적으로 볼 때 상구보다 더 힘든 상황에 놓여있는 셈이다. 자, 이런 상황에서 동주를 위한 최선의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이 책의 화자인 민선경 선생님은 지역 아동 센터에서 일하는 미술 치료사다. 민선경 선생님은 『이웃집 통구』에서 통구가 상구에게 손을 내밀듯이 동주에게 손을 내민다. 하지만 통구가 손을 내미는 방식과는 조금 다르다. 통구가 “밥 먹었니?”하며 사소한 일상을 함께 하는 데 반해 민선경 선생님은 제도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애쓴다. 여러 아이들에게 도움을 줘야 하는 직업상, 상담을 통해 아이들이 마음을 열 수 있도록 애를 쓰긴 하지만 한 아이에게만 유난히 관심이 쏠리는 것은 애써 피한다.
민선경 선생님은 동주가 최소한 학교는 다녀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할머니의 학대를 피해서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보육원에 가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한다. 이를 위해 우선 미술 치료를 통해 동주의 그림자를 거둬내고 싶어 한다. 선생님의 판단이 정확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동주는 그림을 그릴 때면 아무 것도 없는 깜깜한 우주만 그린다.
동주가 할머니에게 잔뜩 얻어맞고 난 뒤 도화지 가득 새빨간 동그라미와 노란 줄로 범벅이 된 화가 난 태양을 그린 날, 민선경 선생님은 결심한다. 하루빨리 보육원에 입소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그러나 민선경 선생님은 뜻밖에도 동주의 반대에 부딪친다. 학교도 다닐 수 있고, 자신을 때리는 할머니로부터 벗어날 수도 있는 제안을 동주가 간절하게 반대한 까닭, 그건 동주의 가장 간절한 바람이 무엇인지 헤아리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동주에게 가장 중요한 건 할머니랑 같이 사는 것이었다. 아기 때 엄마로부터 버림받고, 이어서 아빠한테도 버림받은 동주였다. 동주는 혹시라도 보육원에 가 있는 동안 할머니마저 도망가 버리면 어떡할까 두려웠다.
그래서일 거다. 동주는 보육원에 들어가기로 결정을 한 뒤 몰라보게 달라진다. 이제 한 명밖에 남지 않는 자기 주위의 가족인 할머니를 잃지 않으려는 간절함 때문이다.
동주의 모습을 보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다. 우리의 어린이 복지가 당사자인 아이들이 진심으로 원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형식적인 틀에 갇힌 건 아닐지 걱정스러웠다. 다행히 동주는 나름의 해결 방법을 찾고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현실에서 동주를 얼마나 견딜 수 있게 해 줄 것인가에 대해서는 미지수다. 동주를 바라보는 작가의 안타까운 마음은 충분히 다가오지만 작가가 제시한 희망과는 달리 오히려 불안하기만 하다.

마치며

두 작품을 읽으며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가정이지만 사실은 상구처럼 아무도 “밥 먹었니?” 하고 말을 걸어주는 사람도 없이 외롭게 지내는 경우도 꽤 있을 것 같았다. 또 동주처럼 이런저런 이유로 사실은 가족이 있음에도 버려지거나 버려질까 무서워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이들 또한 많을 것 같았다.
게다가 뉴스에는 왜 이리도 가족 때문에 목숨을 잃거나 폭력에 시달리고, 또 버려지는 아이들이 많이 나오는지……. 그 과정에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홀로 남게 된 아이들은 과연 어떻게 될지……. 상구, 동주와 함께 뉴스 속의 아이들이 겹쳐 보였다.
두 작품이 서로 다른 결말을 이야기하듯 어떤 방법이 최선일지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것이다. 『이웃집 통구』의 결말에 대해 이런저런 논란도 있을 수 있겠고, 『우주 비행사 동주』에서 민선경 선생님과 동주, 그리고 할머니의 시선이 달랐던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이 두 작품의 미덕은 문제적 결말을 품고 있다는 점에 있을 지도 모른다. 소외된 아이를 다루면서도 아이에 대한 무조건적인 동정이나 안쓰러움만 표시하는 게 아니라 함께 해결 방법을 생각하면서 읽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 글은 계간 <어린이문학> 2016년 봄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