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우리 동네 전설은

(한윤섭 글/홍정선 그림/창비/2012년)
              


전설은 어디나 있다!

  현대는 이야기 문화가 사라진 시대라고 한다. 여기서 ‘이야기’란 입에서 입으로 전하던 옛이야기 문화를 뜻한다. 어른들이 각박한 생활에 치여서 이야기 문화를 잊은 지는 이미 오래 전이다. 아이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야기를 들려줄 어른들이 없으니 이야기 문화는 맥이 끊기고 말았다.   
  그런데, 진짜 이야기는 모두 다 사라져 버린 걸까? 옛이야기 ‘이야기 주머니’에서처럼 누군가 이야기를 혼자만 알고 싶어서 주머니 속에 꽁꽁 가두는 바람에 이야기들이 세상에 나오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때로는 이야기 속의 그 ‘이야기 주머니’라는 것이 ‘책’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야기를 주고받는 문화는 사라졌지만 이야기는  예쁘게 포장한 책으로 아이들 손에 들려있으니 말이다. 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는 ‘고정’되어 생명력이 사라지고 있다. 원래 이야기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질 때마다 조금씩 변화하며 발전하기 마련인데, 책은 그 과정이 막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책에 갇히지 않은 이야기들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대개는 나도 어린 시절 많이 들었던 학교 전설류다. 소풍을 갈 때마다 비가 오는 사연, 화장실에 얽힌 사연, 운동장에 있는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 동상에 얽힌 이야기 같은 것들 말이다. 이런 이야기들은 누가 하라고 시키지 않아도 아이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전해진다. 이야기를 전하는 아이들의 눈빛은 진지하다. 미심쩍은 듯 한 표정을 짓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는 마음이 공존할 때가 많다. 그렇다고 진짜 확인을 한 아이들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아무도 확인을 하지 않았지만 그냥 믿는다. 이야기가 사실인지 밤에 학교에 가보자고 하면 무서워 싫다며 손사래를 치는 게 그 증거다.
  이 책에 나오는 득산리라는 마을에도 전설이 있다. 방앗간 집에 사는 할아버지가 병든 할머니를 위해 어린아이들의 싱싱한 간을 구하려 학교에서 혼자 오는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다거나, 자식 셋을 병으로 잃은 상엿집 염꾼 할아버지가 어린아이들을 보면 옛날에 죽은 아이들이 생각나 잡아 가둔다거나 하는 이야기들이다. 아빠를 목사로 둔, 도시에서 내려온 준영이에게도 이 전설은 전해진다. 준영이 역시 처음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며 믿으려하지 않았지만 결국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고 보면 이야기 문화가 사라졌다 해도 ‘전설’만큼은 끊임없이 태어나고 있는 건 아닐까 싶다.

  전설은 어떻게 받아들여지는가?   

  준영이 새 학교에 간 지 이틀째 되는 날 담임 선생님이 종례를 하며 말씀하신다.
  “그럼 득산리 가는 친구들, 오늘부터는 준영이와 꼭 함께 가.”
  아직 친하지도 않은 아이들과 함께 집에 가는 것이 부담스러워 피하는 준영이에게 득산리 아이들은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꺼낸다. 중학생이 되기 전까지는 혼자서 학교에서 득산리로 가는 길을 갈 수 없다는 아주 오래된 규칙이 있다고, 거기엔 비밀이 있다고.
  준영은 아이들이 하는 말을 장난으로 치부하고 혼자서 집에 가고 싶지만 막상 그럴 수가 없다. 아이들이 들려 준 이야기는 어느 새 영상으로 만들어져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준영은 아이들과 함께 방앗간을 지나고 상엿집을 지나며 득산리의 전설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전설은 원래 특정한 장소와 인물과 결부되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 전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 장소와 인물을 볼 때마다 다시 되새길 수밖에 없다. 준영 역시 마찬가지였다. 믿지 않으려 해도 전설은 주위에 너무 가까이 있었다. 더구나 전설은 민담과는 달리 비극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경이로움과 함께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믿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믿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전설, 살아 움직이다

  가을이 되면서 아이들은 상엿간 염꾼 할아버지(돼지할아버지)네 밤밭에 가서 밤 서리를 한다. 준영이는 밤밭에 들어가지는 않지만 아이들이 서리해 온 밤을 얻어먹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범이나 마찬가지다. 준영은 소리를 지르며 아이들을 쫓아오는 돼지할아버지를 피해 함께 달아나며 전설이 현실이 되는 공포에 사로잡힌다.
  그런 준영의 마음을 뒤흔드는 사건이 생긴다.
  첫 번째는 준영이 돼지할아버지와 함께 새벽에 밤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교감을 나누게 된 일이다. 준영은 아이들과 서리를 하다 돼지할아버지에게 잡힌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준영을 가두지도 않았고, 오히려 다음 날 새벽에 밤을 주우러 오라하고서 이 특별한 경험을 하게 해 준다. 이른 새벽 눈을 감고 밤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 장면은 이 책의 백미이기도 하다.
  두 번째는 방앗간 집 할머니가 돌아가신 일이다. 이제 더 이상 방앗간 집 앞을 지날 때 간을 지키기 위해서 두려워하며 뛰지 않아도 괜찮았다. 방앗간 집 할머니는 화장 뒤 돼지할아버지네 밤나무 아래에 묻혔다.
  또 준영이는 방앗간 집 할아버지와 돼지할아버지가 어릴 때부터 오랜 친구였다는 사실을, 또 그동안 두 할아버지 모두 너무 슬픈 기억 때문에 한 사람은 방앗간에서, 한 사람은 밤나무밭에서 나오지 않고 살아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봄이 되자 아이들 사이에서는 새로운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오래 전 방앗간 집 할아버지의 아들이 죽었을 때 뱀산에 죽은 아이를 묻고 떠났다던 며느리가 요즘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또 방앗간 할아버지와 돼지할아버지가 아이들을 잡기 위해 힘을 합쳤다는 것이다.
  상황이 바뀌면서 예전의 전설은 사라지거나 달라졌다. 방앗간 집 할머니가 돌아가셨으니 방앗간 집의 전설은 사라졌고, 오랜 친구였던 두 할아버지가 밤밭 일을 함께 하며 상엿집이 있는 밤밭의 전설은 달라졌다.   ‘아, 이렇게 전설은 이렇게 만들어지고 변화하며 성장하는구나!’

 그래도 전설은 계속된다

  그럼 만일 방앗간 집 할아버지와 돼지 할아버지도 모두 돌아가신다면 전설은 어떻게 될까? 득산리의 전설도 모두 사라질까?
  아마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이 그 해답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준영은 여전히 혼자서 집에 오지 않았다. 그건 득산리의 규칙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서울에서 한 남자아이가 득산리로 이사를 오자 준영과 아이들은 전학 온 친구를 기다렸다 득산리의 규칙이 어떻게 생겼는지 전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렇다. 전설의 주인공은 사라져도 전설은 앞으로 계속 살아남을 것이다.


- 이 글은 한국어린이문학협의회에서 분기별로 펴내는 《어린이문학》 2015년 봄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