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돌시계가 쿵!

(이민희 글. 그림/비룡소/2014년)
              


   우리는 흔히 역사를 구분할 때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로 구분한다. 하지만 이 구분 말고도 역사를 구분할 수 있는 것은 많다. 인간 생활에 큰 영향을 준 것이면 무엇이든지 구분의 기준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구분의 기준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는 역사를 좀 더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시간도 그 구분의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 사람들은 해가 떴을 때는 활동을 하고, 해가 졌을 때는 휴식을 취하고 잠을 잤다. 동물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조금씩 시간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시간은 정밀한 시간이 아니었다. 농사를 지으면서 달력이 생기고, 해시계나 물시계로 시간을 측정하기 시작했지만 이 역시도 보통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모두 지배하지는 못했다.
  지금 우리가 쓰는 시간 개념이 생기기 시작한 건 기차가 생기고 나서 부터라고 한다. 기차역에 반드시 시계가 있는 것도 이 때문이고 말이다. 기차는 시간이 되면 정확하게 출발했다. 따라서 기차를 타려면 시간은 반드시 지켜야 했다.
  이는 지금까지의 생활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이전 세계에서의 시간이란 으레 ‘~쯤’이기에, 약속을 해도 기다리는 건 너무 당연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그 세계는 기차와 시계가 만나면서 단숨에 무너졌다.
  사람들은 시계를 보기 시작했다. 처음엔 기차를 탈 때만 필요했던 정확한 시간이 점점 많은 일에 필요하게 되었다. 학교가 생기면서 학교 수업은 정확한 시간에 맞춰 시작하고 끝났다.
  그리고 현대로 오면서 시간은 점점 더 정밀해졌다. 모든 일에는 정확한 시간이 필요해졌고, 그 시간도 분 단위로, 초 단위로 점점 정밀해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사람이 시간의 주인인지 아니면 노예인지 헷갈리는 경우도 생기곤 했다.

 돌기둥에서 돌시계로!
  이 그림책은 어느 날 초원에 돌기둥이 떨어지면서 벌어지는 소동 이야기다. 하지만 그냥 단순한 소동이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다. 이 소동의 뒤를 따라가다 보면 시간의 노예가 되어 가는 인간의 모습이 그대로 보이기 때문이다.
  동물들은 처음엔 하늘에서 떨어진 낯선 돌기둥을 경계할 수밖에 없다. 정체를 파악할 때까지 멀리서 지켜볼 뿐이다. 다른 동물들이 이 돌기둥을 그냥 돌기둥일 뿐 위험한 물건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마는 반면, 원숭이는 이 돌기둥에 뭔가 특별한 게 있을 거라며 하루 종일 지켜본다.
  드디어 원숭이는 돌기둥의 특별함을 눈치 챈다. 돌기둥의 그림자가 해를 따라 움직이고 있는 걸 보고 돌시계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원숭이는 아침, 낮, 저녁 그림자에 돌을 놓는다.
  한가롭던 초원에 시계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시계가 생긴다는 건 시간을 지켜 무언가를 하게 된다는 뜻이다. 초원의 동물들도 마찬가지였다. 돌시계를 보며 약속을 정하고 만났다.
  그런데 원숭이는 여기서 한 발 더 나가고 싶어 한다. 시간을 좀 더 정교하게 다루고 싶어진 것이다. 원숭이는 시간표를 만들었다. 아침 돌에는 다 같이 모여 밥을 먹고, 낮 돌에는 다 같이 낮잠을 자고, 저녁 돌에는 다 같이 물놀이를 했다.
  초원의 동물 친구들은 지금까지 생활과는 다른, 새로운 생활에 즐거움을 느꼈다. 모든 동물 친구들이 함께 먹고 자고 놀 수 있다는 건 가히 혁명적인 사건임에 틀림없었다. 그 매력에 빠져들은 동물들은 돌시계 주위에 더 많은 돌을 가져다 놓고 더 다양한 시간표를 만들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모든 동물들이 같은 시간에 똑같은 일을 한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시간표가 다양해질수록 그 시간표를 견딜 수 없는 동물들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노래를 부를 기분이 아니어도 노래를 불러야 하고, 춤추고 싶지 않아도 춤을 춰야 하고, 밥 먹고 싶지 않아도 밥을 먹어야 하고……. 애초에 즐겁게 시작했던 시간표는 동물들의 하루하루를 얽매기 시작한다. 결국 이를 견디지 못한 동물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사자와 다른 동물들은 시계를 버리고 자신만의 하루를 되찾기로 했다. 원숭이들은 시계가 없으면 하루가 엉망이 될 거라며 돌시계를 들고 초원을 떠났다.
  여기까지만 봐도 초원에 떨어진 돌기둥 때문에 벌어진 소동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 원숭이 입장과 다른 동물들의 입장에 대해서도 생각할 거리가 무척이나 많다. 우리가 정하기 좋아하는 시간표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그런데 이 책의 진짜 반전은 이 다음이다.

 인간의 폐부를 찌르는 진짜 반전
  사자와 다른 동물들이야 시계를 버리기로 했으니 돌기둥이 떨어지기 전으로 돌아가면 그만이다. 그럼 초원을 떠난 원숭이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원숭이들은 돌산에 마을을 만들고 돌시계를 단단하게 세우고 그들끼리 생활을 하기 시작한다. 그 원숭이들의 존재가 누구인지를 짐작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시간의 주인이 아니라, 시간의 노예가 되어 시간에 맞춰 정해진 대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들이다.
  스무 바닥의 장면에 단순한 문장 몇 마디가 만들어내는 이야기라고 하기엔 그 내용이 너무 깊고 심오하다. 그렇다고 어렵고 복잡한 이야기도 아니다.
  어린아이들이라면 그저 유쾌한 돌시계 소동으로 읽어낼 수도 있겠고, 동물들이 돌기둥의 그림자를 보고 시간을 정하는 모습을 통해 해시계의 원리를 발견하는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시계가 시간을 조직화하면서 인간의 삶은 어떻게 변화하게 되었는지를 깨닫는 사람도 있겠고, 작가가 던지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날선 질문이 폐부를 찌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림 또한 마찬가지다. 색연필과 크레파스로 그린 그림은 마치 아이들이 그린 그림처럼 친근하게 느껴진다. 생태 법칙과는 상관없이 초원의 왕 사자부터 여러 다양한 동물들이 함께 즐기며 살아가는 모습도 아이들의 세계를 닮아있다.
  그리고 미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앙리 루소의 명작을 패러디한 장면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이 책은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제각각 자신만의 재미와 의미를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이야기의 깊이와 함께 어린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모두를 독자로 품을 수 있는 힘, 이것이야말로 이 책의 진짜 매력이다.


- 이 글은 한국어린이문학협의회에서 분기별로 펴내는 《어린이문학》 2014년 가을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