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흑인 역사의 또 다른 모습들


《할아버지의 손

(마거릿 H. 메이슨 글/플로이드 쿠퍼 그림/서애경 옮김/꿈교출판/2013년)
              


  1. 미국에서 흑인 문제에 대해 놓치고 있던 것

  ‘미국 흑인의 인권 이야기’하면 떠오르는 것?
   나에게 가장 오랜 기억은 초등학교 시절 읽었던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과 위인전 《링컨》이었다. 이때의 기억이 너무 강렬해서일까? 한동안 나에게 미국 흑인 인권의 문제는 흑인 노예의 문제로 한정되어 있었다. 분명 위인전 《마틴 루터 킹》도 읽었던 것 같기는 한데 이상하게도 흑인 노예의 문제와는 또 다른 흑인들의 인권 이야기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지냈다. 아마도 어린 마음에 흑인들이 노예에서 해방되면서 흑인들의 문제는 모두 다 해결된 것처럼 생각했던 것 같다.
  흑인들이 노예에서 해방된 뒤에도 아주 오랫동안 백인들로부터 노골적인 탄압을 받아왔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 건 한참이나 뒤의 일이었다. 그때의 충격은 참 컸다. 흑인들은 버스에서도 백인들이 타면 자리를 양보해야 했고, 학교나 상점까지도 흑인들이 가는 곳이 따로 있었고, 이런 상황 속에서 흑인들의 ‘버스 안 타기 운동’과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등장한 것이었다. 흑인들은 국민의 권리인 참정권조차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었다. 민주주의의 상징인양 세계 경찰국가를 자부하는 미국은 1960년대에 이르러서야 흑인들에게 전면적인 참정권을 보장했다.
  흑인들의 인권 문제는 노예 해방으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흑인들은 자신의 인권을 보장받기 위해서 끊임없이 투쟁해야 했다. 평범한 일상생활의 모든 것까지도 말이다. 하지만 말이 ‘일상생활의 모든 것’이지 그 모든 걸 짐작하기란 어렵다. 우리는 그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알기 이전에 이미 링컨 대통령과 노예 해방, 버스 안 타기 운동과 마틴 루터 킹처럼 역사책에 나오는 큰 사건들만을 기억하게 됐기 때문이다. 혹시 우린 이런 큰 사건들 때문에 그들의 삶에서 진짜 중요한 작고 소소한 일상의 문제들을 못 보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 책에 나오는 사건처럼 말이다.

   2. 차별은 어디에나 있었다

   이 책은 1950~60년대 미국 디트로이트에 있는 흰빵 공장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당시 빵공장 흑인들은 빵 반죽을 할 수가 없었다. 백인들이 검은 손으로 만진 흰빵은 싫어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흑인들은 바닥을 쓸고, 빵 포장을 하고, 트럭에 싣는 일밖엔 하지 못했다. 검은 손은 마치 불결하다는 듯 여겨졌다.
  흑인들은 검은 손 차별을 막는 법을 만들기 위해 거리로 나섰고, 결국 흰 손이든 검은 손이든 누구나 밀가루 반죽을 할 수 있게 됐다. 지금껏 알려지지 않았던 흑인들의 투쟁의 역사인 것이다.
  이 투쟁의 역사는 당시 벌어지고 있던 여러 투쟁과 견줄 때 비교적 작은 사건이었는지도 모른다. 잘은 모르지만 이 책에서 보여주는 투쟁의 모습도 다른 굵직굵직한 사건들과 견준다면 온건해 보인다. 이 일이 지금껏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데에는 이런 까닭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며 새삼 다시 깨달았다. 흑인들이 인권을 인정받기까지는 정말 많은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없는 소소한 일상의 작은 일들까지도 그들에게는 다 투쟁의 역사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3. 이 책이 작은 역사를 전하는 방식

   이 책이 당시의 사건을 전하는 방식은 조금 독특하다. 작가는 당시의 작은 역사를 전면에 등장시키지 않는다. 대신 할아버지와 손자의 따뜻한 교감을 보여준다. 할아버지와 손자의 교감을 이어주는 건 ‘손’이다.   할아버지는 손자에게 말한다. 할애비는 이 손으로 운동화 끈도 잘 맸고, 피아노도 잘 쳤고, 카드를 가지고 묘기를 부릴 수도 있었고, 야구도 잘 했다고. 할아버지가 손으로 잘 할 수 있다고 말한 것들은 평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들이다.
   그러기에 뒤이어 나오는 장면은 다소 당혹스럽다. 할아버지는 다른 사람과 똑같은 평범한 손을 갖고 있었지만, 유독 흰빵 공장에서 빵 반죽을 만지고 굽는 건 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단지 ‘백인들이 검은 손으로 만진 흰빵은 싫어한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백인들과 똑같은 손을 가지고 있었지만 단지 색깔이 다르다는 까닭 하나만으로 벌어지고 있는 차별의 부조리가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이다.
  결국 할아버지와 다른 흑인들은 검은 손 차별을 막는 법을 만들기 위해 나선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굳이 목소리를 높이며 말하지 않는다. 그저 잔잔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할뿐이다. 하지만 잔잔한 감동의 파문은 점점 커져간다. 독자에게 감동이란 작가가 얼마나 목소리를 드높이는가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얼마나 독자에게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상황에 몰입할 수 있게 만드는가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책의 진짜 감동은 이다음부터 시작된다.
  손자는 할아버지에게 말한다. 이 손으로는 운동화 끈을 맬 줄도 몰랐고, 피아노를 칠 줄도 몰랐고, 카드를 섞을 수도 없었고, 야구공을 치지도 못했다고. 하지만 이젠 뭐든지 할 수 있고, 멋진 빵을 구울 줄도 안다고.
  아무 것도 할 줄 몰랐던 손자는 이젠 뭐든지 할 수 있는 손자가 된다. 똑같은 검은 손이지만 불가능한 것이 있던 할아버지와는 달리 손자에게는 불가능한 것이란 없다. 독자들은 안다. 작가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건 바로 할아버지 대에서 이룬 검은 손 차별을 막는 투쟁의 성과 덕이라는 것을 말이다.
  할아버지의 역사는 단순히 과거의 역사가 아니었다. 할아버지의 역사가 이룬 성과는 지금의 손자에게 이어지고 있는 현재 진행형이다.

  4. 할아버지와 손자의 사랑스런 교감이 느껴지는 그림

  이 책은 분명 검은 손에 대한 차별 철폐에 관한 내용이다. 하지만 그림만 보고서는 이런 내용을 짐작하기란 어렵다.   
  부드러운 파스텔 그림은 할아버지와 손자의 모습을 아름답게 보여준다. 할아버지의 표정에선 손자에게 뭐든지 가르쳐 주고 싶은 사랑스러움이 가득하다. 손자가 할아버지가 가르쳐 준 일들을 해낼 때의 표정은 할아버지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그 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건 손의 모습이다. 유별나게 강조하진 않았지만 손의 모습은 어느 그림에서나 눈에 띈다. 손의 모양만으로도 감정과 기분이 전해진다.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운동화 끈을 매고, 피아노를 치고, 카드를 섞고, 야구를 하는 방법을 가르쳐 줄 때의 감정이 전해지고, 손자가 혼자서 할아버지에게 배운 것을 해낼 때의 감정이 전해진다. 검은 손 차별 철폐라는 심각한 이야기가 아니라 할아버지와 손자의 사랑스러운 교감을 다룬 그림책으로만 생각해도 충분히 감동이 전해지는 그림이다.
  마지막 장면은 특히나 기억에 남는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손을 맞잡은 할아버지와 손자의 모습이다. 그런데 두 사람이 보고 있는 곳이 다르다. 할아버지는 손자를 내려다보고 있고, 손자는 저 멀리 높은 곳을 바라본다.
  할아버지가 살아온 삶의 역사는 손자를 향해 있고, 손자는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무한한 가능성이 펼쳐진 미래를 꿈꾼다.
  아,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대대로 살아온 모습이자, 역사가 우리 삶에서 전해지는 과정이 아닐런지!
  참으로 복잡 미묘하면서도 잊지 못할 감동적인 그림책이다.


- 이 글은 한국어린이문학협의회에서 분기별로 펴내는 《어린이문학》 2013년 가을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