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의미를 묻다


《시간 가게

(이나영 글/문학동네/2013년)
              


  1. 시간을 얻을 수 있다는 달콤한 유혹

시간을 다스리는 일은 현대인에게 가장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다. 시간은 최대한 아껴 쓰고 쪼개 써야 한다.
방학 때마다 세우곤 했던 생활계획표는 어쩌면 시간을 다스려야 한다는 강박증이 낳은 것인지도 모른다. 생활계획표를 얼마만큼 잘 짰는지의 여부는 하루 24시간을 얼마만큼 아끼고 쪼개어 조직화해냈는가에 달려 있었다. 규칙적인 생활은 그저 명목에 그칠 때가 많았다. 하루 24시간 속에 생활 모두를 쪼개어 틀에 가두어 놓고, 이를 지키지 못할 때는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만 했다.
물론 이런 모든 것들이 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면 별로 문제될 게 없다. 문제는 나 자신의 선택과 상관없이 ‘생활계획’이라는 미명 하에 시간을 쪼개서 생활계획표를 만들게 되고, 정작 자신은 생활계획표에 얽매여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생활계획표를 왜 짜야하는지, 나에게 필요한 건 무엇인지, 어떻게 활용하는 것이 좋은지, 정말 필요한 건 뒷전이고 생활계획표 자체가 주인공이 되고, ‘나’는 생활계획표에 끌려 다니는 식이다.
이런 모습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다 마찬가지다. 특히 어른들의 통제를 받는 아이들은 이런 현상이 더욱 심하게 나타난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학원 가방을 둘러메고 학원을 전전한다.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는 생각할 겨를도, 기회도 없다. 남들보다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최고가 되기 위해서, 남들도 다 하니까……. 아이들은 엄마가 정해준 학원으로 바쁘게 뛰어다닌다. 학원 수업과 수업 사이에는 길어야 30분 정도의 여유뿐이다. 이 시간 동안 저녁도 해결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학원가에는 10분 남짓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아이들로 넘쳐난다. 컵라면, 삼각김밥, 떡볶이, 토스트…….
이쯤 되면 맘 놓고 멍 때리며 있을 시간이나,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할 수 있는 시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보낼 수 있는 시간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
“시간을 사고 싶니?”
하고 묻는다면
“예!”
하고 대답하지 않을 아이들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시간을 살 수만 있다 누구라도 시간을 사서라도 여유를 갖고 싶을 것이다. 그러니 시간을 살 수 있는 ‘시간 가게’가 있다면 그것만큼 달콤한 유혹도 없을 것이다.

2. 시간을 살 수 있는 ‘시간 가게’

시간을 살 수 있는 가게?
시간을 산다는 건 누구에게나 똑같이 있는 24시간이 아닌, 나만의 시간을 더 가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말도 안 되는 엄청난 가게가 학원 시간에 쫓기던 윤아의 눈앞에 나타났다!
처음엔 그저 학원에 가는 길을 물어보려 들어갔지만 시간을 살 수 있다는 달콤한 유혹을 떨쳐버릴 수는 없었다. 더구나 시간을 사는 데에는 돈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자신의 기억 가운데 진심으로 행복했던 때의 기억 하나면 하루 10분의 시간을 살 수 있으니 그것만큼 매력적인 것도 없다.
방법도 간단했다. 시간 가게에서 받은 시계를 차고 있다가 시간이 필요할 때 숫자판 옆에 있는 버튼을 누르고 행복한 기억을 떠올리기만 하면 된다. 그럼 시계에 있는 바늘이 돌기 시작하고, 주위의 모든 것은 멈춘다. 시계 바늘이 한 바퀴 도는 10분 동안 온전히 자신만의 시간이 펼쳐지는 것이다. 이 10분 동안에는 그 무슨 일을 한다 해도 이 세상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정말 행복했던 기억은 소중하긴 하지만 현실에서 그다지 필요성을 느끼진 못한다. 더구나 시간에 쫓기며 사는 현실에서는 소중한 추억을 떠올릴 만한 여유조차 없다. 그러니 행복했던 기억 같은 건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한다. 필요한 시간을 살 수만 있다면 행복했던 기억을 기꺼이 팔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윤아는 기꺼이 시간을 샀다. 엄마는 아빠가 돌아가신 뒤 윤아 하나만 바라보며 밤늦도록 일하며 윤아의 공부만 다그쳤다. 학원에 늦기라도 하면 엄마의 잔소리를 들을 게 뻔했다.
하지만 시간을 사는 건 한 번에 끝나지 않았다. 시계를 차고 있는 한 윤아를 유혹하는 건 너무 많았다. 결국 다시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려 시간을 샀다. 그래서 일등만 하는 수영이의 수학 시험지를 베껴 써서 전교 일등을 해냈다. 준비물을 안 가져왔을 땐 다른 아이들 준비물을 슬쩍하기도 했다. 또 학교에서 보는 단원평가, 학원에서 보는 모의시험을 볼 때도 계속 시계 덕을 봤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수학 경시대회 날, 믿었던 시계가 작동을 하지 않았다. 또 다시 일등을 수영이에게 넘겨야 했다.

3. 무엇이 문제일까?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었다. 시계는 작동하지 않았고, 시험은 망쳤다. 문제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
‘그래. 시계만 고치면 모든 걸 제 자리로 돌릴 수 있어.’
윤아는 또 다시 시계에만 의존하려 했다. 분명 문제의 본질은 시계 때문이 아닐 텐데 말이다. 그리고 시계를 고치는 대가는 가혹했다. 이번엔 하루 10분의 시간을 위해 행복했던 기억을 두 개씩 떠올려 팔아야 했다. 윤아가 시계에 의존하면 할수록 윤아에게는 행복했던 기억들이 사라져갔다.
문제는 행복했던 기억들이라는 것이 현재와 아무런 관련 없이, 단순히 과거에 있었던 일만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오랜만에 베프 다현이를 만났지만 윤아는 다현이가 어색하기만 했다. 다현이와의 행복했던 기억이 모두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아빠에 대한 기억도 잘 나지 않았다. 시간을 사면 행복해질 줄 알았는데 윤아의 과거와 현재는 엉망이 되어 버렸다. 과거의 기억이 사라지니 현재의 ‘나’도 점점 불완전해져갔다.  
결국 윤아는 다시 시간 가게를 향했다. 시간을 돌려주고 행복했던 기억을 되돌려 받기로 했다. 이렇게 하루에 10분씩 윤아의 시간은 사라지고 행복했던 기억이 되돌아왔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져갔다. 하루에 한 번씩 갑자기 시계가 작동하면서 혼자서 이상한 장소에 있거나 혼자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상황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되돌아오는 기억도 이상했다. 처음엔 몰랐는데, 되돌아오는 기억이 윤아 자신의 기억이 아니었다. 사라진 행복했던 기억들, 하루에 한 번씩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라지는 10분의 시간, 여기에 자신의 기억이 아닌 다른 기억들이 끼어들면서 윤아의 현재는 그야말로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이렇게 걷잡을 수 없게 되고 나서야 윤아는 깨달았다. 문제는 시계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4. 마침내 깨달음

마침내 윤아는 깨달았다.
행복했던 기억은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지금의 내가 있게 한 기반이라는 것을. 그리고 1등을 위해서 달렸던 건 엄마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였을 뿐,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윤아의 이런 깨달음은 사실 조금은 급작스럽고 지나치게 깔끔한 탓에 작위적인 냄새가 나기도 한다. 하지만 적어도 윤아가 이런 깨달음에 다다르는 과정은 충분히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시간의 노예가 되어 자신을 잃어가는 아이들의 모습, 그리고 아이들을 그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는 어른들과 사회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하게 해 준다. 시간과 행복한 기억의 거래라는 소재는 씨실과 날실처럼 엮여지면서 ‘나’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해 준다.  
문제를 깨달은 윤아는 과감하게 시계를 풀었다. 윤아가 엄마도 바꿀 수 있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어쩌면 엄마는 윤아처럼 바뀌기 힘들지도 모른다. 어른들은 아이들보다 바뀌기 힘든 존재니까 말이다. 그렇담 결국 이 책을 읽는 아이들에게 희망을 가져야겠다.
이 책을 읽는 아이들도 윤아처럼 과감하게 시계를 풀어 던질 수 있기를!


- 이 글은 한국어린이문학협의회에서 분기별로 펴내는 《어린이문학》 2013년 봄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