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슬픈 모습, 비정규직


《비정규 씨 출근하세요?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어린이책 작가 모임 지음/사계절/2012년)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단지에 이사 온 지 만 9년이다. 그동안 아파트 풍경은 많이 바뀌었다. 20년이 다 된 낡은 아파트지만 최첨단 경비 시스템으로 바뀌는 중이다. 아파트 입구에는 중앙통제실이 생겨서 들어오는 차들을 감시한다. 주민 차량 외에는 중앙통제실의 허락을 받아야 차단기를 통과할 수 있다. 각 동에 있던 경비 아저씨들과는 친해질 기회가 점점 적어지고 있다. 오랫동안 서로 인사하고 지내며 도움을 받던 경비 아저씨들은 하나 둘 사라졌다. 조금 친해질 만하면 경비 아저씨들이 바뀐다. 그나마 이렇게 된 건 아파트 주민들이 한바탕 들고 일어난 덕분이다. 경비 아저씨들을 다 없애고 무인 경비 시스템으로 바꾸려는 시도가 벌써 서너 번쯤 있었다. 아직까지는 괜찮지만 아마 그렇게 오래 버티기는 어려울 것 같다.

무인 경비 시스템으로 바꾸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관리비 절감’을 내세운다. 이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무인 경비 시스템을 찬성하는 주민들의 수는 점점 늘어간다. ‘반대’ 쪽에 서명을 해야 하는 처지에서는 눈치가 보인다. 왜 반대를 하는지에 대해서 일일이 대답하기도 참 곤혹스럽다.

책을 보는 내내 경비 아저씨들 생각이 났다. 물론 책을 읽다 보니 경비 아저씨뿐 아니라 비정규직이 정말 많다는 사실도 새삼 알게 됐다.

이 책은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어린이책 작가 모임’에서 《박순미 미용실》 이후 2년 만에 내놓은 작품 모음집이다. 《박순미 미용실》이 ‘우리 시대의 평화’를 주제로 한 작품집이었다면, 이번에 나온 《비정규 씨, 출근하세요?》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노동의 의미와 인간에 대한 예의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집이다. 이 책에 참여를 한 작가들은 이 책에서 나오는 인세 전액을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네트워크’에 기부한다. 작품으로 한 번, 기부로 또 한 번,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실천 활동에 나선 셈이다.

이 책의 미덕 중 하나는 단순히 비정규직 노동자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를 가족으로 둔 사람들의 애환과 가족의 관계 등까지 살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은 다세대 주택을 배경으로 1층, 2층, 3층, 그리고 옥탑방에 살고 있는 사람까지,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에서 힘들게 일하는 사람들과 그 주변의 모습을 보여준다.

다세대 101호에는 학교에서 운동회가 열려도 가족 중 누구도 올 수 없는 아이가 산다. 가족이 없는 것도 아니다. 엄마도 있고, 할머니, 이모도 있다. 하지만 대학 시간 강사인 엄마는 교수님들 눈치 때문에 갈 수가 없고, 간병인 할머니도 10년을 하루같이 일했지만 운동회에 가려면 본인 부담으로 다른 사람을 구해야만 해서 갈 수가 없다. 방송작가인 이모 역시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 때문에 갈 수가 없다.

201호에는 오페라 단원이었지만 해고되어서 길거리에서 공연을 하는 이모를 둔 아이가 나온다. 이모를 격려해주기 위해서는 가족들이 거리 공연을 함께 보면서 힘을 보태줘야겠지만 사정이 녹록치가 못하다.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아빠는 너무나 바빠서 시간을 낼 수가 없고, 학습지 선생님인 엄마도 수업 준비에, 채점에, 신입 회원 충원에 수업까지 마치면 밤 9시가 넘어서야 집에 돌아온다.

두 가족 모두 분명 가족은 있지만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신경을 써주기에는 너무 열악한 조건이다.

301호에 사는 가정주부이자 프리랜서 출판 편집 디자이너인 신소영의 생활은 비정규직을 넘어 여성노동자의 삶까지 생각하게 한다. 한쪽으로는 맞벌이하는 부인의 고단한 삶이 느껴지고, 또 한쪽으로는 편집자, 글 작가, 그림 작가, 번역가 등 출판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열악한 현실을 떠오르게 했다.

아마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 말고도 더 힘든 상황에서 꿋꿋하게 일하며 살아가는 더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을 것이다. 혹시 ‘나는 정규직이니까……’하며 위안을 삼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비용 절감’ ‘경영의 효율성’ 등을 내세우며 정규직도 한순간에 비정규직이 될 수 있는 세상이다. 작가들의 문제의식처럼 우리도 “정말 그래도 괜찮을까?”하는 물음을 던지며 살았으며 좋겠다.


- 《고래가 숨쉬는 도서관》 2012년 겨울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