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죄를 물을까?


《연이동 원령전》

(김남중 글/오승민 그림/상상의힘/2012년)

 


1. 1980년대의 절망

요즘 영화판의 화제작 두 편이 있다. 하나는 강풀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26년’이고, 또 하나는 고 김근태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남영동 1985’다.
1979년 12. 12. 쿠데타에 성공한 전두환은 1980년 대통령 자리에 올랐고, 그 해 5월 광주민주화항쟁을 피로 물들이고 공포 정치를 시작했다. 당시 남영동 대공분실은 민주화항쟁을 위해 투쟁하던 사람들을 모질게 고문하는 공포의 장소로 악명이 높았다. 영화 ‘남영동 1985’의 주인공 고 김근태는 이곳에서 희생된 많은 사람들의 상징일 뿐이었다. 1987년 민주화항쟁을 여는 계기가 됐던 고 박종철은 이곳에서 고문으로 죽음을 맞고 말았다.
어느 덧 약 30년의 세월이 흘렀다. 한 세대가 지나고 말았다. 그렇다면 이제 80년대의 역사는 과거의 역사이기만 할까?
29만원 밖에 없어서 추징금도 못 내는 29만원 할아버지가 된 전두환은 여전히 화려한 생활을 하고 있다. 김근태를 모질게 고문했던 고문기술자 이근안은 목사가 되어 잘 살고 있고, 박종철이 자신의 죽음과 맞바꾸며 보호하려고 했던 박종운은 한나라당에서 국회의원으로 출마를 하고, 여전히 새누리당에 머물고 있다.
이미 죽은 사람들은 어쩔 수 없다고 치자. 하지만 80년 광주에서 가족을 잃고 힘겨운 생활을 해 온 사람들, 모진 고문 때문에 정신 질환은 물론 건강을 크게 망가트려서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없었던 사람들, 또 그때의 일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과연 1980년은 지나간 역사일까?

2. 80년 광주의 역사를 묻다

이 책은 우리에게 1980년 광주에 대해 묻고 있다. 작가는 전작 『기찻길 옆 동네』(창비)에서 1980년 광주민주화항쟁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 바 있다. 그리고 이번에 시대를 현재로 옮겨 다시 한 번 광주민주화항쟁을 이야기하고 하고 있다.
이 책은 참 쉽지 않다. 과거에 있었던 광주민주화항쟁이 아니라 현재 우리가 기억해야할 광주민주화항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읽기 힘든 책은 아니다. 초등학생들 사이의 로맨스도 있고, 귀신의 정체를 알아가는 추리도 있고, 흥미진진한 요소들이 많다. 광주민주화항쟁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 해도 읽는 데 무리는 없다. 주인공 무진이 역시 광주에 대해 전혀 몰랐으니까 말이다.

3. 책의 배경, 등장인물

이 책의 배경은 연이동. 글자는 달라도 발음이 비슷한 동네 연희동, 바로 전두환이 살고 있는 동네다.
이곳에 빚 때문에 오갈 곳 없는 무진이네가 이사를 온다. 그리고 이곳에서 무진이는 여러 사람을 만난다.
첫 번째로 만난 사람은 한 손으로 피가 흐르는 허벅지를 힘껏 누르고 절뚝절뚝 걸어가는 남자였다. 그 사람은 무진이 눈에만 보일 뿐 다른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보니 그림자가 없었다.
두 번째를 만난 사람은 영지다. 무진이처럼 다른 사람에겐 보이지 않는, 다리를 다친 그 사람을 볼 수 있었다. 무진이와 동갑이다.
세 번째 영지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 운동복을 입은 남자다. 이 남자가 나타나면 영지는 어디론가 사라진다.
네 번째로 만난 사람은 용도다. 무진이와 같은 6학년이지만 체격도 크고 검도를 잘 한다. 운동복을 입은 남자가 무진이를 괴롭히던 걸 구해준다.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큰 교회 목사의 손자다. 용도의 눈에도 다리 다친 사람이 보인다.
다섯 번째로 만난 사람은 무당 할머니다. 원령들을 막기 위해 결계를 쳐놓고 원령들과 맞선다.
무진이와 이 다섯 사람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요 인물이다. 무진이와 용도와 영지는 친구가 된다. 영지는 무당 할머니의 딸이다. 80년 광주에서 죽었기 때문에 지금껏 그 때 그 모습대로 어린아이다. 무당 할머니는 영지가 딸이라는 걸 모르고, 무진이와 용도도 마지막에야 영지의 정체를 알게 된다. 다리를 다친 사람은 80년 광주에서 죽은 영혼이다. 원령들이 장군을 벌하는 걸 막기 위해 애를 쓴다. 운동복을 입은 사람은 저승차사다.

4. 원령들이 몰려온다

“원령들이 몰려온다. 나는 막아야 해.”
다리를 다친 남자가 무진이와 용도 앞에 나타나 말한다.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도 잘 살고 있는 한 남자에게 복수하기 위해 원령들이 몰려온다고. 만약 원령들이 직접 복수에 성공하면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무너져, 저승의 영혼들이 세상을 뒤덮고 사람들이 산 채로 저승의 심판을 받게 된다고 한다. 때문에 그 사람이 남은 수명을 누리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도 잘 살고 있는 한 남자, 바로 연이동 장군이다.
하지만 무진이나 용도나 연이동 장군에 대해 아는 건 이발소 할아버지가 말씀하신 것뿐이다. 할아버지는 연이동 장군은 나라를 구한 훌륭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있는 무진이에게 원령은 적이요, 장군은 보호해야 할 대상이었다. 당연히 다리를 다친 사람의 의도와는 다른 의도로 장군을 보호해야 했다.
장군에게 직접 알리는 방법은 실패를 하고, 옛날 장군을 위해 축복 기도회까지 열어주었던 용도 할아버지인 서목사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단칼에 거절당하고 만다. 장군은 종교가 다르니 그런 일까지 생각할 시간이 없단다.
이제 문제는 무진이와 용도가 알아서 해결할 수밖에 없다. 영지는 두 아이에게 무당 할머니를 찾아가라고 한다. 장군을 지키는 일은 자신이 할 일이라고 하면서.

 5. 장군을 보호해야 하는 이유

연이동 장군이 전두환이라는 걸 뻔히 아는데……, 그 사람을 보호해야 한다니! 도대체 그 이유가 뭘까?
무당 할머니를 찾아갔을 때 그 자리에 있었던 다리 다친 사람은 말했다.
사람은 죽으면 저승으로 가고, 그곳에서 전생의 모든 것을 잊고 다시 태어나야 이승에 올 수 있다. 귀신은 원래 사람을 해치면 안 되는데, 만약 원한을 품은 영혼들이 인간에게 직접 복수를 하게 되면 그 영은 영원히 악령이 되어 이승을 떠돌아야 한다. 지금까지 장군을 보호해 왔던 건 장군을 위해서가 아니라 원령들을 위해서다.
말을 듣고 보니 장군을 보호해야 하는 이유도 공감이 갔다. 하지만 왜 무진이가 원령들과 맞서 싸우는 순간까지도 장군은 훌륭한 사람으로, 원령은 적으로만 생각했는지는 여전히 궁금했다.
궁금증은 곧 풀렸다. 무진이가 원령들의 모습을 제대로 보게 됐기 때문이다.
옛날 양복을 입은 남자, 쭈글쭈글 때 묻은 한복을 입은 할아버지, 고무줄 바지를 걸치고 머리 수건을 두른 할머니, 교복을 입은 남학생, 머리를 양 갈래로 묶은 여학생, 아기를 업은 아주머니, 배가 보름달처럼 부른 새댁, 수염이 텁수룩한 지게꾼 아저씨…….
장군이 죽인 사람들이었다. 청동 거울을 통해 그 날 있었던 일도 볼 수 있었다. 짧은 순간이지만 무진이는 새로운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영지는 말했다. 장군은 자기 마음대로 사람들을 죽였지만, 원령들이 장군의 목숨을 빼앗으면 똑같은 짓을 하는 거라고. 그러니 세상이 장군을 벌해야 한다고.

6. 세상이 장군을 벌하는 방법

원령들의 원한은 저승차사의 멸겁화염에 스스로의 영혼이 소멸되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을 정도로 가득 차 있다. 원령들은 세상이 장군을 벌주길 기다렸지만 세상은 장군을 잊고 말았으니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그럼, 원령들의 영혼도 구하고 장군도 벌 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무진이는 원령들에게 말한다.

“장군을 우리가 직접 벌줄 수는 없어요. 어른들은 장군을 잊은 것 같고 장군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아니에요. 우리는 어른들과 달라요. 안 배웠으니까 몰랐던 것뿐이에요. 난 친구들한테 장군이 누군지, 무슨 짓을 했는지 알려 줄 거예요. 용도는 나보다 친구가 더 많아요.”

“저승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원한을 풀지 못하면, 환생하지 못한다고 들었어요. 아기가 태어나지 못하는 거잖아요. 그럼 우리가 장군이 어떤 사람인지 이야기해 줄 동생이 없는 거예요. 저승으로 돌아가서 환생하세요. 아기가 되어 돌아오세요. 약속할게요. 우리가 꼭 기억하고 다 이야기할게요. 여러분이 어떻게 죽었는지, 장군의 목숨을 거두러 왔다가 왜 그냥 돌아갔는지 동생들한테 꼭 이야기해 줄게요. 그러다 보면 세상이 다 알게 될 거예요. 우리도 곧 어른이 되잖아요. 그럼 우리가 장군을 벌줄 수 있어요.”

무진이의 말을 듣다 보니 눈물이 찔끔 난다. 살기에 바빠서 신경을 쓰지 않고 있는 사이 광주는 사람들에게 점점 잊혀져가고, 장군은 점점 당당해지고 있다.
이제 다시 광주를 기억해야 한다. 원령들이 장군을 벌 줘서는 안 되는 또 다른 이유, 그건 현재의 역사를 책임져야 하는 사람은 지금 살아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일 거다. 장군을 벌주는 건 원령들 몫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몫인 것이다.


- 이 글은 한국어린이문학협의회에서 분기별로 펴내는 《어린이문학》 2012년 겨울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