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유혹, 그러나……

허순봉 글구성/박종관 그림/능인/97.8.30./325쪽/7,000원

베스트셀러라는 게 곧 좋은 책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베스트셀러 기록에 신경을 쓴다. 남들이 다 읽는 베스트셀러를 혹시 빼놓고 읽지 않으면 남들보다 뒤처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때론 일종의 유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인기가요 순위 프로그램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이렇게 말해놓고 나니 내가 뱉은 말이긴 하지만 마치 '모든 베스트셀러가 다 별로'라는 듯이 들린다. 하지만 오해는 없기를 바란다. 베스트셀러 가운데는 좋은 책도 많이 있다. 또 몇 년씩 독자들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아 스테디셀러로 자리잡는 경우도 있다.
다만 베스트셀러라는 게 앞서도 말한 것처럼 인기가요 순위 프로그램처럼 일종의 유행을 타는 것이라서 그 당시의 분위기를 반영하기는 하지만 단지 그 분위기만을 반영할 뿐, 질적인 것까지 반영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아동물의 경우는 그 유행의 정도가 더 심하다. 학교에서, 학원에서, 놀이터에서 친구들 과 만나며 쉽게 퍼지기 때문이다. 어떤 만화 영화가 텔레비전에서 상영되면 그 만화를 엮어 출판한 책은 거의 베스트셀러가 된다. 또 어떤 경우는 교육적인 효과를 노리는 부모님 들의 기대심리와 아이들의 호기심, 그리고 얄팍한 상혼으로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한다.
그리고 베스트셀러는 베스트셀러라는 타이틀만으로도 충분한 홍보 효과를 발휘해 어느 순간부터는 누가 굳이 이 책이 베스트셀러라고 선전을 하지 않아도, 뒤떨어지기 싫은 사람들의 심리와 맞아 떨어져 꾸준히 베스트셀러로 남기도 한다.
지난 해 아동물에서 베스트셀러를 가장 많이 낸 출판사 가운데 하나는 '능인'이다. 능인은 《만화로 보는 조선왕조 500년》을 주축으로 《만화로 보는 고려 왕조 500년》, 《만화로 보는 신라왕조 1000년》, 《만화로 보는 고구려 왕조 700년》, 《만화로 보는 백제 왕조 700 년》으로 베스트셀러 순위에 자주 진입을 했다.

     
== 만화로 보는 조선 왕조 500년 베스트셀러 순위(교보문고 집계)  ==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2위

2위

1위

1위

1위

3위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3위

4위

6위

9위

6위

9위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순위에 따르면 《만화로 보는 조선왕조 500년》은 97년 8월 30일 초판 을 발행한 뒤 98년 내내 10위권 안에 들었다.
또 98년 2월 5일 발행된 《만화로 보는 고구려 왕조 700년》은 98년 3월, 4월에 각각 4위와 5위를 기록했고, 98년 4월 25일 발행된 《만화로 보는 백제 왕조 700년》은 98년 5월에 8위, 98년 7월 10일 발행된 《만화로 보는 신라 왕조 1000년》은 98년 7월에 6위, 8월에 5위, 9월에 1위, 10월엔 4위를 기록했다.
월간 베스트셀러 순위에 들지 못했던 건 97년 12월 20일 발행된 《만화로 보는 고려 왕조 500년》뿐이다.
능인은 지난 해가 아니더라도 꾸준히 베스트셀러를 출판해 온 출판사다. 어떤 비결이 있었 던 걸까?
교보문고 홈페이지에서 능인 책 목록을 찾아보면 모두 214권을 볼 수 있다. 그런 데 그 목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능인이 베스트셀러 출판사가 된 까닭을 짐작해볼 수 있다. 교육적인 효과를 중시하는 부모님이나 선생님들, 그리고 만화를 좋아하는 아이들의 심리를 정확하게 꿰뚫은 출판 기획이 적중한 것이다.
일단 '세계 고전 시리즈'로 《돈키호테》나 《폭풍의 언덕》,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등 20권이 나와 있고, '만화로 보는 우리 고전 시리즈'로 《금오신화》, 《사씨 남정기》, 《인 현왕후전》 등 30권이 나와 있다. 이 밖에도 '만화로 보는~'이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세계 역사 1000년》, 《한국 역사 1000년》등이 있고, 《만화 삼국지》, 《만화 한국사》, 《만화 로 배우는 손자병법》등 얼핏 제목만으로 보았을 땐 어려운 내용을 쉽게 알 수 있도록 만든 참신한(?) 기획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TV 애니메이션 소설 시리즈'의 경우도 아이들의 마음을 확 휘어잡을 만한 기획이다.
이 책들 가운데 특히 '만화로 보는 우리 고전 시리즈'는 몇 년 전 베스트셀러로 유명세를 치 르기도 했다. 요즘도 가끔 서점에 나가 보면 아이들 손을 잡고 온 어머니들이 아이들에게 적극적으로 이런 책들을 권하고 사주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어머니(부모님)들 입장에서는 이해가 되기도 한다. 아이들한테 그냥 책을 고르라고 하면 이 상한(!) 책들을 골라 사 달라고 조를텐데, 적어도 이런 책들은 제목만 봐도 오랜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고전임을 쉽게 알 수 있으니 내용도 믿음직하고, 그 내용이 조금 어렵다 싶기는 해도 만화로 되어 있으니 아이들이 쉽게 읽을 수도 있으리라 여겨지는 것이 다. 아이들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더 보고 싶은 책을 사 달라고 조르기 위해서라도 어머니 가 권해 주는 책은 보는 게 좋고, 또 만화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냥 슬슬 읽어나가기에도 좋고, 여기 저기 재미있는 요소들도 있고, 왠지 공부랑 관련된 책을 읽고 있다는 느낌도 갖 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 이런 책들을 다 짚어 볼 수는 없다. 다만 능인에서 나온 책들의 기획이 기본 적으로 97년-98년에 걸쳐 출판된 《만화로 보는 OO왕조 OOO년》시리즈와 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은 짚고 넘어가도록 하자.

여기서는 지난 해 베스트셀러로 가장 오랫동안 인기를 누리던 책 《만화로 보는 조선왕조 500년》을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이 책은 지난 98년 한 해 동안 교보문고의 베스트 셀러 집계에서 《수학귀신》(비룡소) 다음으로 2위를 차지한 책이다. 그리고 11위-14위를 《만화로 보는 고구려 왕조 700년》, 《만화로 보는 신라 왕조 1000년》, 《만화로 보는 고 려 왕조 500년》이 나란히 차지하고 있다. 한 출판사에서 한해에 이렇게 많은 권수의 책을 베스트셀러 목록에 진입시킨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또 하나 유심히 살펴 볼 일이 있다. 그건 6위에 《이야기 조선왕조 오백년사》(청솔)이 올랐 다는 점이다. 이 책은 지난 번 베스트셀러 분석에도 나간 적이 있는 책이다. 또 5위에는《뚱 딴지 만화 명심보감1》(파랑새)이 올랐다. 성인물에서와 마찬가지로 98년 내내 역사물이 강 세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 1998년 연간 베스트셀러 목록(교보문고 집계)  ==

순위

도서명

저자명

출판사명

1 위

수학귀신

H.M.엔젠스베르거

비룡소

2 위

조선왕조 500년

허순봉

능인

3 위

돌아온 진돗개 백구

송재찬

대교출판

4 위

저학년 탈무드

마빈 토케이어

한국어린이교육연구원

5 위

뚱딴지 만화 명심보감 1

김우영

파랑새

6 위

이야기 조선왕조 오백년사

이혜경

청솔

7 위

공부 잘하는 아이들의 20가지 습관

박신식

문공사

8 위

108가지 속담이야기

이효성

지경사

9 위

고학년 탈무드

조종순 엮음

한국어린이교육연구원

10 위

엄마아빠 몰래 공부 일등하는 법

편집부

파란나라

11 위

고구려 왕조 700년

허순봉

능인

12 위

신라왕조 1000년

허순봉

능인

13 위

고려왕조 500년

허순봉

능인

14 위

우리몸의 비밀

배명희

삼성출판사

15 위

수수께끼 왕

장석준

글동산

16 위

꼬마과학이야기

편집부

작은평화

17 위

단숨에 깨치는 과학상식 1

김석철

웅진출판주식회사

18 위

일학년이 읽고 싶은 생각동화 1

김학선 외

파랑새

19 위

어린이의 리더십을 키워주는 33가지 이야기

이상배

꿈이있는집

20 위

아기공룡둘리

김수정

계몽사

 

《만화로 보는 조선 왕조 500년》(이하 '조선 왕조')의 표지에 보면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 다.

우리가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역사는 영원히 되풀이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즉 과거를 아는 것, 그것은 과거를 거울 삼아 현재의 우리 모습을 정확히 알며, 그것을 토대로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서입니다.
《만화로 보는 조선 왕조 500년》은 《조선왕조실록》을 중심으로 엮어, 조선 시대의 정 치·경제·사회·문화를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엔 조선 시대의 위대한 인물과 업적이 있는가 하면, 실수와 잘못을 거듭하는 인간들의 나약한 모습도 담겨 있습니다.
위대한 업적은 본받으려고 애쓰고, 실수와 잘못은 되풀이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우리가 역사에서 배울 것을 나름대로 짤막하게 잘 정리해놨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책을 들면 너무나 우리 역사를 쉽게 배울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조선왕조의 계보를 쭉 외진 못해도 누구 다음에 누가 어떻게 해서 왕위에 올랐고 궁궐 내에서 어떤 일 이 벌어졌는지가 눈에 그려지는 것만 같다. 또 책 앞부분에 있는 천연색 사진이나 각 장이 끝날 때마다 덧붙여 있는 '역사 상식 퀴즈', 책 뒷부분에 있는 조선 연표 및 계보를 보면 더 신뢰감이 간다.
'아! 역사를 이렇게 쉽게 접근하는 방법도 있구나!' 하고 감탄사를 내뱉을 수도 있다. 어머니 들이 이래서 사주는 구나 싶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신뢰감을 느끼는 바로 그 부분 은 우리를 속이기 위한 하나의 장치이다. 마치 달콤한 과자로 아이들을 꽤내는 유괴범 같다 고나 할까!
이 책의 가장 큰 문제는 기가 막히게도 우리가 '이렇게 쉽게 역사의 흐름을 알 수 있구나'하 고 생각했던 부분에 있다. 이 책은 모두 5장으로 나누어 각각 100년씩의 역사를 다루고 있 는데, 100년씩 시기을 나눈 거 외에는 거의 대부분의 내용이 왕위 계승과 관련된 내용을 다 루고 있다는 점에서 별 차이점이 없다. 왕위 계승 문제야 조선왕조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여기서는 몇 몇 왕을 제외하고는 왕들을 마치 허수아비처 럼 그리고 있고, 신하들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당쟁만을 벌이고 있는데다, 왕들은 여기에 이리 저리 끌려다니기만 하는 무능력한 존재로 그려져 있다. 그리고 신하들도 왕을 이리 주물럭 저리 주물럭 할 궁리만 하는 간신들처럼 그려져 있어,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이래서 조선이 망했어!' '왕이나 신하들이나 하는 짓거리는 다 똑 같아'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경우는 좀 다르긴 하지만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으로 폐위 당한 우왕의 아들 창왕의 모습은 이렇게 그려진다.

어린 창왕이 못가에 쭈그리고 앉아 개구리한테 묻는다.
"개구리야, 나 진짜 왕 맞니?"
개구리는 눈을 감고 혀를 쑥 내밀며 대답한다.
"응, 왕 맞아. 하지만 허수아비 왕이지롱."(<그림 1> 참조)


<그림 1> 

이어 왕위에 앉게 되는 고려 마지막 왕인 공양왕도 마찬가지다.
공양왕은 "나는 망국의 군주가 되긴 싫어"라고 하며 떨고 있는 표정으로 있고, 앞에는 조선 건국의 실세 둘이 왕관을 공양왕에게 내밀며 이렇게 말한다. "싫어도 하셔야 됩니다. 어서 왕관을 쓰시고 어의를 입으십시오."
'직접 입기 싫다면, 강제로 입히지 뭐." (<그림 2> 참조)

그리고 다음 그림에서 4년 뒤 폐위당한 공양왕은 보따리 하나를 메고 고개를 숙이고 울며 떠난다.
"으흐흑, 결국 나를 망국의 군주로 만들었구나"하면서.
(<그림 3> 참조)


<그림 2>


<그림 3>

 이 두 가지 경우는 조선을 중심으로 쓰여진 책에서는 그럴 수 있다고 어느 정도 덮고 넘어 갈 수 있다. 하지만 뒷부부을 계속 봐도 기본 태도는 바뀌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단종의 경우를 보자.
어린 단종은 '왠지 신하들이 무섭고 두려워.'하며 벌벌 떨고 있고, 곁에 있는 신하들은 양팔을 꼬거나 주먹을 다듬어가며 '이 기회에 우리 신하들이 권력을 장악해야 해.'하고 있다.
또 "임금께서는 여기에 서명만 해 주십시오."라는 신하의 말에 '시키는 대로 안 하면 맞을 것 같아.'라며 가만히 있는다.


<그림 4> 

그리고 수양대군이 우의정 김종서 부자를 왕이 어리다고 업신여긴 죄로 죽인 뒤 단종에게 이를 보고하니 단종은 '그 무서운 김종서 대감을 죽였다니……! 난 수양 숙부가 더 무서워.'하며 벌벌 떤다.

이 책대로라면 단종은 김종서 등 신하들이 자신을 쥐고 흔들기 때문에 무섭기 한이 없고, 또 수양숙부(세조)의 경우도 무서운 신하들보다 더 무서운 존재로만 느껴졌을 뿐이다. 그런데 역사책에서 이렇게 단종 개인의 감정으로만 사건을 바라보게 할 수 있을까? 당시 어린 단종의 속마음이 어땠는지 알 수는 없지만, 현재 우리들이 당시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기 위해서는 김종서 등 신하들의 입장이나 세조의 입장이 좀더 자세히 드러났어야만 할 것이 다. 역사 속에서 볼 때 단종이 무서워했던 김종서 등은 절대 간신이 아니다. 세조 역시 조카 를 죽이면서까지 왕위에 오른 건 문제가 있지만 나름대로 조선을 위해 애쓴 인물이다. 또한 사육신도 사육신 나름의 입장이 있기에 그런 결단이 가능했던 것이다.
이런 저런 의미는 다 생략한 채 벌어진 사건만을 어린이들에게 '툭' 던져 놓은 꼴이다.

이런 모습은 계속된다.
왕이 정책은 어느 파를 등용하느냐에 따라 왔다 갔다 한다. 조선 시대에 당쟁이 심했고, 왕의 입장에 서 각 파를 잘 다스리는 일이 그 어떤 다른 일보다 중요하고 첨예한 일이었다는 점에서 이 처럼 당쟁을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하는 게 한편 이해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역사란 것이 과연 궁궐 안에서의 왕위 계승과 또 신하들의 자리다툼의 역사일까? 그리 고 당쟁은 이 책에서 보인는 것처럼 서로가 서로를 헐뜯고 자기들 파를 중앙관료로 더 진입 시키기 위한(이른바 출세만을 위한) 그런 행동이었을까? 아니, 그런 요소들이 있다고 해도 단지 그런 이유 때문만이고, 다른 어떤 이유는 없는 걸까?
안타깝게도 이 책에서는 다른 의문을 가질 여유를 주질 않는다. 조선 500년의 역사를 유행 처럼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도 무리가 있겠지만, 그 많은 내용을 만화로 엮다 보니 다뤄야 할 내용은 축소되고 다루는 내용도 더욱 단정적이 되어 버렸다.
많고 어려운 내용을 만화로 쉽게 스피드하게 전개를 해 나가려다 보니 생긴 일이다. 읽는 사람들은 사건을 쫓아가기에 바뻐 생각할 틈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또 왕위 계승과 관련된 내용 외에 다뤄진 내용 으로는 2, 3, 4장의 마지막 부분에 '조선 전기의 사회와 문화' (교육과 과거 제도/엄격한 신 분 제도/불교와 유교/학문과 예술 - 모두 7쪽), '조선의 농업과 상업이 발달'(농업·상업·화 폐 - 3쪽), '조선 후기의 사회와 문화'(무너지는 신분 체제/예술/학문 - 5쪽)뿐이다. 조선 사 회의 실상을 알기에는 너무 부족한 양이다.

왜 이런 식이 될 수밖에 없을까?
가장 큰 이유는 능인의 얄팍한 상술을 바탕으로 한 출판 기획에 있겠지만, 글구성을 맡고 있는 작가의 몫도 크다고 생각한다.
글구성을 맡은 허순봉은 87년 《아동문예》에서 동화 부문에서 작품상에 당선되며 등단했 다. 본직은 분명 동화작가인 셈이다. 허순봉의 동화들은 읽어본 적이 없으므로 여기서 얘기 할 바는 못 된다. 다만 허순봉의 작품 가운데 약 절반 가량이 이처럼 '만화로 보는~'의 글 구성이라는 점은 짚고 넘어가야 겠다.
일단 《만화로 보는 OO왕조 OOO년》시리즈의 경우도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 조선 등 5 권을 모두 구성했다. 또 능인에서 나온 '만화로 보는 우리 고전 시리즈'에서도 7권을, 역시 능인에서 나온 《세계 역사 1000년》과 《세계 역사 2000년》을, 또 글수레에서 나온 《세계사 위인전 - 근대편》의 글구성도 맡았다. 이 밖에도 만화의 글구성을 맡은 경우가 더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책에 만화라고 밝혀있는 경우만 해도 이 정도이다. 이 많은 작품들이 대개 5년 내에 이루어진 것들이다. 놀라운 작가의 역량이다.
반면 의심도 난다. 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하고 동화 작가로 등단한 작가가 동화 쓰는 일 말고도 이렇게 많은 역사 관련 책들을 쉽게 펴 낼 수가 있을까 하는 의심말이다. 물론 대학 전공과 관계없이 개인적으로 역사 공부를 꾸준히 했을 수도 있다. 게다가 ≪조선왕 조실록≫도 완역이 된 상태이고, 이미 아동물 이전에 성인물에서 역사물이 꾸준히 출판되었 기 때문에 이런 책들을 참고로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 시대를 다루는 역사책을 한 두 번 읽어본다고 해서 내 것이 되지는 않는다. 여러 번 읽고 의문나는 점들을 확인하고 한 뒤에야 자기 나름의 역사를 보는 눈이 생기는 법이다. 그런데 《만화로 보는 OO왕조 OOO 년》의 경우는 약 1년만에 조선, 고려, 고구려, 백제, 신라 5권이 한꺼번에 나왔다. 그 전부 터 꾸준히 준비를 했었다고 해도 너무 무리였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무리가 역사를 그저 하나의 현상으로 바라보게 한 것은 아닐까 여겨진다. 그래서 책 표지에 실린 것처럼 역사가 현재의 우리 모습을 정확히 알며, 그것을 토대로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게 아니라, 허탈함과 얄팍한 지적 만족감만을 남겨준다. 게다가 이 책을 읽는 독자가 아직 역사를 본격적으로 배우지 않은 어린이들이라는 점에서 이 책을 읽는 어린이에게 역사에 대해 편향된 시각을 심어주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그리고 과거 우리의 역사 교육이 어린이들에게 역사를 보는 눈을 키워주는데 중심이 맞춰있던 것이 아니라, 지배 권력의 집권을 정당화시켜주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이용되었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더욱 걱정된다. 그저 표면상 나타나는 역사의 한 단면만을 보는 건 역사를 이해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를 수 있었던 건 책을 단지 교육의 한 수단으로 생각하게끔 하는 교육 정책과 공부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안 되는 동화보다는 학교 공부와 관련된 책을 주고 싶어하는 부모님들, 또 아이들의 단편 지식을 보고 아이들 평가하는 선생님들, 유행이 라면 일단 쫓아가고 보는 우리의 분위기, 이를 이용한 출판사의 상혼들이 맞물려 가능했다 는 점에서 우리 모두에게 자성의 기회를 주고 있다.
(글 : 오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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